생각해보면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이렇게 집에 가기는 아쉽다. 오늘은 많이 지쳤으니 누구든 만나서 이 마음을 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근시간이 되면 연락처를 훑어보고 톡방을 스크롤하게 된다. 운 좋게 연락이 닿아 술이라도 과하게 마시면 '그냥 집에나 갈 걸.'하고 후회하면서도 이 습관과도 같은 만남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친구와 만나 함께 하소연을 풀어놓다 보면 우리는 두 가지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 마음은 '공감'이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슬퍼한다. 힘들 때 친구를 찾는 가장 큰 이유이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밖에 없으니까.
두 번째 마음은 '반감'이다.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이제 서로 하소연은 그만하고 적당히 끝냈으면 좋겠는데,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슬슬 지쳐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공감한다고 해도, 상대와 같은 마음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상대도 그렇다.
이야기 따위는 됐고, 신나게 춤이나 추면서도 오늘을 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잠깐' 잊을 뿐이다. 자려고 누우면 힘들었던 오늘 하루가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신나게 놀았지만 그때뿐이고, 여전히 나는 한 발짝도 오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 오늘을 잊으려는 시도는 늘 잠깐의 공감, 잠깐의 망각에서 끝이 난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 공감, 슬픔, 위로는 본질적으로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만 작동하고, 그들과 멀어지면 다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누군가를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만났고, 우리가 헤어지면 우리가 만남에서 기대해도 것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내 문제는, 결국 내 문제이다. 상대가 나를 공감해주고 위로해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단지 잠깐의 공감과 휴식이 필요하다면 사람만큼 좋은 상대는 없다. 그 어떤 좋은 취미도 사람처럼 내 이야기에 반응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다. 그 이상을 기대하고, 내 문제가 해결되리란 기대를 갖고, 그 잠깐의 만남에 모든 시간과 관심을 쏟는다면 결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 빨리 줄이지 못하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가는 하루가 한심해지는, 내 톡에 다음날에야 연락하는 친구가 미워지기 시작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뿐이다. 가뜩이나 요즘은 코로나19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사람보다 '나'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내 문제를 내가 돌아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무엇을 찾아낼 절호의 기회이다. 나를, 오늘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