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우리는 결국 헤어질 운명입니다

사회적 관계의 허상

by 구어령

"최대리, 잠깐만 와 볼래요~"


박 부장의 부름. 느낌이 좋지 않다. 어색한 존댓말, 닭살이 돋을 듯한 친절한 어조.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겠구나. 자기가 봐도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다면서, 바쁘겠지만 어떻게 하겠냐면서, 난처한 척 묘하게 웃는 얼굴을 하면서, 내일까지 달라고 하겠지.


“네, 부장님.”


우뚝 솟은 오른손 중지를 왼손으로 살포시 덮고 양손을 공손하게 모아 박 부장에게로 간다.




직장생활은 관계의 드라마이다. 누구나 사장과 직원, 팀장과 팀원, 부서와 부서, 회사와 회사라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만들고 오늘을 꾸려간다. 그래서 직장인에게 관계에 대한 집착은 본능과도 같다. 이에 따르는 갈등과 스트레스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관계가 유지되지 않고는 직장생활 자체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직장생활의 전부라고 믿었던 이 관계는 퇴사, 혹은 은퇴의 순간과 함께 한 번에 사라진다. 연락처에 있는 수 백 명의 사람들도, 주고받았던 수 천, 수 만 통의 메일도, 혹시나 하고 챙겨 나온 몇 권의 명함첩도 단 하룻밤 사이에 그 쓸모를 다 한다. 이것이 직장인으로서 만들어 가고 있는 관계의 실체이다. 절대로 인생을 걸만한, 걸어서도 안 되는 관계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직장 안의 관계에서 비롯된 모든 감정들, 소속감이나 자부심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나 열등감, 패배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 모두는 직장 안에 머물게 해야 한다. 그 감정들이 내 일상, 내 인생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관계에 집착하고 지배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사장님이 칭찬했다면 앞으로의 모든 인생이 잘 풀릴 것 같고, 박 부장이 막무가내로 일을 준다면 참 힘들게 사는 인생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직장인이기 이전에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인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선택한 생존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직장 안의 관계는 그 생존수단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유지보수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유지보수는 밖이 아닌 그곳에서 해야 하는 것이고, 끝나면 그곳에 두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직장과 나는 잠시 관계를 맺은 사이일 뿐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곧' 끝난다. 그러니 사람 문제에 너무 힘을 쏟지는 말자. 손이 다칠까 봐 끼고 있는 면장갑처럼, 더러워지면 빨고, 구멍 나면 꿰매고, 이도 저도 안 되면 그냥 버리면 된다. 장갑을 끼고 있느라 평생을 함께할 '나'라는 사람과의 관계에 소홀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끔은 일을 멈추고 장갑을 벗고 내 손을 맞잡아 보자. 내 인생의 진짜 관계는 그 손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