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시계는 바쁘지 않다

바쁨을 바라보는 마음에 대해

by 구어령

“차장님, 이건 언제까지 드리면 될까요?”

“ASAP.”

“다 ASAP인데, 뭐가 제일 ASAP이죠?”

“가장 ASAP 한 거.”




배가 고프면, 고프지 않을 때도 있다. 고프지 않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고픈지도 알 수 있다. 허리가 아픈 것도, 머리가 아픈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늘 바쁘다. 안 바쁜 시간이 있어야 바쁜 시간이 무엇인지 알 텐데, 안 바쁘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니 늘 바쁘다고 생각한다. 퇴근하는 길에 친구를 만나도, 주말에는 할 일 없이 TV 보고 잠만 자도,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면 그냥 바쁘게 산다고만 한다. 세상 모두가 바보라면, 바보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이 바쁘기만 하다면 더 이상 바쁜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늘 바쁘다고만 한다.


어차피 직장인에게 바쁜 삶은 숙명이다. 중요한 것은 바쁜 삶도 있다면 안 바쁜 삶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막연하게 바쁘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바쁨과 바쁘지 않음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에 쫓기는지도 모르면서 쫓기듯 사는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제 바쁘지 않은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려보자. 그리고 오늘부터 하나 씩 그 일을 시작해보자. 나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하고 싶었던 그 많은 일들을. 물론 오늘은 바쁘니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취미로 할 수 있는 부담 없는 것들부터 말이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바쁘지 않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진짜 바쁨과 가짜 바쁨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시계는 1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움직인다. 그렇지만 누구도 시계 보고 바쁘게 산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도 그렇게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쁘다는 마음은 오직 내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내 마음이 아니라고 말하면, 바쁨도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