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오늘이 최선이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
늘 자기 이야기에 정신없다. 내 딴에는 자기 생각해서 충고하고, 위로하고, 질책해도 결국은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자기 생각대로 하고야 만다.
어쩌면 그때, 그렇게 공부 공부하던 엄마도 내가 마음에 안 들었겠지.
엄마 말씀 잘 들을 걸.
‘최선(最善)’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풀이가 나온다. 하나는 ‘가장 좋고 훌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 정성과 힘’이다.
‘이것이 최선의 결과다.’와 ‘정말 최선을 다했다.’의 차이이다. 둘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결과의 수준을 뜻하고, 후자는 과정의 질을 의미한다. ‘최선’을 다 했다고 해서 ‘최선’의 결과가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이 둘을 쉽게 떼어 놓지 못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최선’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밤낮없이 공부했다면 시험을 잘 봐야 하고, 학점과 스펙관리를 열심히 했다면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 잘못된 믿음은, 단지 잘못된 것을 넘어 아주 위험한 믿음이다. 나를 뭘 해도 안 되는 영원한 패배자로 만들고, 때로는 삶을 포기할 정도의 절망감을 안겨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아쉽게 진 다음 이야기한다.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당신이 봐도 참 열심히 잘했다. 정말 아쉬운 패배였다. 당신은 그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진 놈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손가락질할 것인가? 최선을 다했는지는 난 모르겠고, 졌으니 당장 은퇴나 하라고 욕을 퍼부을 것인가?
그에게 할 이야기를 이제 당신에게 해 주면 된다.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됐다고 나에게 말해주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한 번도 최선을 다해 살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고작 이런 회사나 다니고 있는 거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면, 당신의 옛날 사진 한 장 꺼내 들기를 권한다.
가장 후회되는 시절의 사진일수록 좋다. 표정은 해맑을수록 좋고, 돌아갈 수 있다면 당장 돌아가 뒤통수 한 대 후려치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고 싶은 사진일수록 좋다.
그런 사진 한 장 꺼내 넣고,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마냥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당신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자. 어렸던 것뿐이다. 알면서도 못했던 것뿐이다. 오늘의 기억 없이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똑같이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기억을 가져가도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된 것이다. 더 이상 그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묻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어제를 탓하느라 내일을 놓치게 될 뿐이다. 내일은, 오늘을 사는 당신이 책임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