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욕심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욕심
"우리 아버지가 늘 그러셨어. 물건을 살 때는 제일 좋을 것을 사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후회 안 한다고.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아. 싼 건 다 이유가 있다니까."
"그래서 그 비싼 것을 사겠다고? 성능 비슷한 싼 것도 많은데? 물론 비싼 게 좋겠지만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난 정말 이해를 못하겠네."
"무슨 얘기야? 그래서 안 산다는 거야. 최고는 너무 비싸고, 싼 것은 사면 안 되니 안 사는 거야."
"오, 그럴듯한데?"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취미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진이다. 카메라 자체도 비싸고 렌즈도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소형차 한 대 값 정도는 우습게 들어간다. 물론 저렴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으면 이런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싼 렌즈가 당연히 결과물도 좋으니까. 그리고 이왕 살 거라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직장인이다. 돈은 한정되어있고, 결국 가성비 끝판왕을 찾기 위한 검색이 시작된다. 적당한 가격에 내가 필요한 성능을 가진 최적화된 모델이 있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적당한 가격이란 적당한 성능일 뿐이고, 눈은 점점 높아지기만 한다. 결국 이 고민, 정확히 말하면 이 검색은 하루 이틀을 넘어 몇 주, 길게는 몇 달에 걸쳐 계속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취미 고민은 급할 것이 없기에 빠른 결정을 내릴 명분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은 것인지, 카메라를 사고 싶은 것인지 구분이 안 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고 싶어 카메라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카메라 구입이 전부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구입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다. 사고 나면 한두 달 만지작거리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사 갈 때 잘 챙겨야 할 비싼 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단지 의지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막상 해 보니 정말 재미가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나에게는 맞지 않는 취미였던 것이다. 그래서 비싼 취미일수록 사전 점검 과정이 필수이다. 사진은 핸드폰으로도 찍을 수 있고, 작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다양한 앱들도 많다. 그러니 충분히 연습을 해보고, 정말 나에게 맞는 취미인지 확인해 보고 사도 늦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취미에 대한 욕구가 바로 장비욕으로 넘어가니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비는 취미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취미가 없으면 장비도 쓸모가 없어진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취미가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욕망으로 둔갑하고, 갑자기 수백만 원짜리 장비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마음의 준비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가졌던 욕구가 틀어졌으니 준비도 제대로 될 도 없다. 취미를 가져보려다 돈 만 날렸다는 푸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이래서 안 된다고 말이다.
명필은 붓을 탓해도 된다. 명필이니까. 그렇지만 처음 취미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붓을 탓하면 안 된다. 붓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게 재미있나 재미없나를 따져보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다는 확신이 들 때, 그때 비싼 붓을 고민해도 늦지 않다.
취미는 장비를 소유하는 재미가 아니다. 비싼 장비를 찾기 전에, 먼저 마음의 확신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실패해도 후회가 없다. 확신을 가지고도 실패했다면 그때는 재빨리 되팔면 된다. 서둘러 되파는 마음도 확신이 강할 때나 가능하다. 확신이 없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만 보내면 중고 값만 떨어질 뿐이다. 첫째도 마음, 둘째도 마음, 장비는 가장 마지막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