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것들은 곧이곧대로 해석하다 보면 어떻게 번역해도 의미가 어색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우리말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바꿔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만일 번역가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어를 곧이곧대로 1:1로 대응하듯 해석하던가 아니면 대충 뭉개듯 번역한다면 독자는 반드시 알아챈다. 철학 원서나 관념적 소설 같은 서적의 번역이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번역가는 단순히 글을 옮겨 적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원문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의 배경지식을 갖추고 작가의 의도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이러한 어려움을 번역가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면 모두가 번역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번역가에게 영어 능력만큼이나 필요한 건 배경지식과 우리말 활용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같은 의미라도 어떠한 어휘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표현과 느낌이 달라지는데 생각보다 그 차이가 크다. 그래서 잘 된 번역문은 읽기도 편하고 표현도 굉장히 수려해 번역문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맞춤법이 틀린 게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건 기본에, 불필요한 피동형 문장으로 번역투를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따져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문법적 오류나 외래어식 표기법은 없는지도 살펴야 된다.
그러한 미세한 차이가 쌓이고 쌓여 결국 번역의 질을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번역의 질을 운운하기엔 나의 경력이 아직 그리 길지 않아 조심스럽지만, 최근 이 점에 있어 크게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이렇게 번역이 어려운 일이야! 다들 좀 알아줘~'라고 말하고 싶어 그런 건 당연히 아니다.
세상 모든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남들이 모를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을 터인데, 굳이 그런 목적으로 이야기해 본다 한들 공감도 되지 않을뿐더러 공허하기만 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렇듯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사정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일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남들의 성취를 쉽게 평가절하하거나, 그들의 성과 결과에만 주목하지 과정에서 겪었을 어려움과 노력은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지식과 경험을 통해 배운 사실을 그때그때 상기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노력을 쉽게 보려 하는 본성이 먼저 발동한다. 그리고 그러한 본성은 내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더욱 강하게 발휘한다.
결국엔 그런 의미이다.
'나를 먼저 인정해야 다른 사람도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반대로 '나를 인정해 주는 타인이 있어야 나도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이렇듯 수치로 환산되지도 않고 실체조차 모호한 이 말랑한 감정이, 다른 어떠한 세속적 가치보다도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고 동시에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데 중요한 가치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바라는 게 있다면 조금 진부하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사는 이곳이 주위 사람들이게 조금 더 친절하고 상냥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