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가난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으며, 학벌 또는 부모가 될 수도 있다.
열등감이라는 이름의 이 역린은 평소엔 잠잠했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별것 아닌 사건이 계기가 되어 불거져 나와 감정을 찔러 댄다. 그 통증이 너무나도 거세어 어쩌다 밖으로 새어 나올 때면 영문을 알리 없는 주변 사람들은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통증이 일 때마다 땅굴로 파고 들어가 숨죽여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에겐 '허무맹랑함'이라는 이름의 역린이 있다.
허무맹랑한 생각들을 하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치들로 안을 가득 채워 넣었다. 다다를 수 없는 이상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이상을 만족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해 내 안에 있는 나 자신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편이다.
'내 주제에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종종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내뱉는 말이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용어가 있다. 철학자 니체가 말한 좌절감을 주는 대상에 대한 적대감 또는 배척, 정당화와 같은 심리적 방어기제를 의미하는데, 자신 안에 있는 시기와 질투심을 부정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을 말하며,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자신의 진짜 욕망을 부정한다.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허세야' '저 사람은 돈이 많으니 분명 부정을 저질렀을 거야'
니체는 노예의 도덕이 이 르상티망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며 이것이 인간의 진정한 생명력을 상실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내가 블로그 글을 쓰는 것도, 번역 일을 하거나 영어를 잘하고 싶은 것도 모두 관심과 인정을 갈구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개인의 르상티망적 심리에 반발하고자 행하는 일종의 자기 확대적인 행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저녁, 최근 하는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옆에서 신나게 유튜브를 보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천진한 아이의 모습에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느껴져 괜스레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이렇게 물었다.
"OO 이는 나중에 커서 뭐 하고 싶어?"
평소 무슨 일을 해도 좋으니,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어떤 대답을 할지가 기대되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 당연히 아이돌이지!"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이돌 춤을 신나게 추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르상티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목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말을 깊숙이 삼키며, 한층 짙어진 안쓰러운 눈으로 그 작은 몸 짓을 말없이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