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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휘 Feb 12. 2024

배달이 너무 편하잖아

왜 이렇게 작은 불편도 크게 느끼게 됐을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면서 체감하는 엄청난 변화. 배달을 시킨다! 바로 얼마 전에 도시에서 살 때 소비하는 에너지 운운한 주제에, 배달을 이렇게나 시키다니. 이사하면서도 미니멀하게 살겠다면서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렸는데, 바로 배달과 배송을 시키고 있다.


나는 사실 배달음식을 안 시키는 것을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배달은 플라스틱 포장용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거의 시키지 않고, 배달을 시키느니 집 앞에서 간단히 먹고 들어가거나 슈퍼에서 간편식이나 라면을 사서 조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5일간 배달을 4번이나 시킨 것이다. 스스로에게 너무 충격을 받았다. 


핑계를 대자면 집 근처에 슈퍼마켓도 없고 식당도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골목 옆에 동네마트가 있어서 그때그때 식재료를 사곤 했고, 집 앞에 식당도 많아서 늦은 시간에도 뭐든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트나 식당을 가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인적이 드문 길을 15분쯤 걸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집 밖으로 나갈 때 뭔가 큰 마음을 먹고 나가야 한다.


포장재가 많이 나와서 인터넷 쇼핑도 가급적 하지 않으려는 편이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하지는 않기에, 식재료 배송만이라도 줄이려고 직접 매장에 가서 장을 보곤 했는데 이젠 새벽배송을 너무 시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실은, 도보 10분 정도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긴 하지만) 재래시장이 있으니 이용할 수 있는데 그 고갯길이 어쩜 그리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지.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재래시장은 당연했고,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15분쯤 걸어가는 것도 너무 당연했는데. 이제는 집 앞에 물건이 와 있지 않으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또 핑계를 대자면, 서울은 배달이 너무 편하다! 심지어 쿠폰을 먹이면 가서 사는 것보다 더 싼 경우도 있다. 쿠폰에 카드 포인트를 써서 100원에 음식을 주문하고는 뭔가 공짜로 먹은 기분에 뿌듯하기도 했다. 이래서 한 번 편해지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구나. 손쉽게, 심지어 더 저렴하게 문 앞까지 맛집 음식을 받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의지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라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어떤 환경인가, 그리고 내가 어떤 환경에 익숙해졌는가 하는 점이 행동을 결정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편의점 앞은 지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개인의 의지는 사회적 환경에 비해서 한없이 나약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그래도 의지를 내어본다. 이제 배달 그만 시켜야지, 이게 그래도 나에게는 의지로 줄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편리에 너무 익숙해지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잡고 집밥을 지어서 냉동실에 쟁여 두었고 커피도 사서 구비해 두었다. 매주 플라스틱 한 봉지를 내다 버리는 생활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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