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의 열 일곱번째 단어 : 친구
엄마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은 다 어디서 뭐해. 하고 물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의 친구들이 시간이 흘러 어딘가 흩어져 나를 잊어버릴까 무서워서. 엄마는 글쎄, 내가 연락 안 하면 다들 잘 안 보고 살아서. 최근에 아주 늦게 결혼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본 게 마지막이네.했다.
몇 해전 엄마와 아침부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나서 집으로 가려는데 엄마가 누군가를 보더니 깜짝 놀라고는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경애야!!"
엄마는 나를 두고 한달음에 걸어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쪼르르 따라간 나는 어색하게 인사 몇 마디를 건네고 신난 엄마의 대화를 엿들었다.
경애님은 엄마의 옛 친구였다. 서울 사람도 아닌데 우리 동네의 한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거였다. 경애님은 그 공원에서 꾸준히 도슨트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신기한 우연이네하고 생각했다. 짧은 대화가 마무리되고 이제 집에 가나 했는데 엄마는 신나고 바쁜 걸음으로 가까운 가게에 들러 큰 페트 커피 몇 개를 사 와서 경애님과 다른 봉사활동자 분들께 나눠드리자고 했다. 워낙 걸음이 빠른 사람의 들뜬 걸음을 쫓아가는 일은 힘들었지만 두 발자국 뒤에서 열심히 따라가며 본 신난 엄마의 뒷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언젠가 할머니가 뜯어온 나물을 얻으러 심부름을 다녀온 적이 있다. ( 우리 집은 채집 유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채집과 낚시에 진심이다. ) 또 돗자리 한가득 널려있는 나물을 보며 물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랑 가셔서 이걸 다 캐오신 거야? 할머니 동네에 오래된 친구 계셔. 그분이랑 지하철 타고 나가서 캐오신 거야. 엄마가 답해줬다. 할머니는 오래된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멀리멀리 가서 내가 모르는 풀을 잔뜩 캐오신다. 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사실이었다.
엄마 나는 내 친구들이 너무 좋아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기뻐 늙어서까지 친구였으면 좋겠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알려주곤 했다. 내가 바라는 것 그대로 나의 어른들에게도 유치한 단짝 친구들이 있었으면 했다. 시덥지않은 연락을 하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괜찮은.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돌려보며 항상 생각한다. 저 언니들 또 싸우네. 나도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되어서 유치하게 싸우고 싶어. 친구들이랑 그땐 이름을 알게 될 나물을 같이 캐고, 지금 같이 듣는 노래를 어느 날 문득 생각이나 꺼내듣고 싶어.
삶이 빠르게 밀려들어와 각자의 헤엄을 치느라 손을 놓치더라도 같은 방향으로 떠밀려갔으면. 정신을 차려보니 같은 백사장에서 흐린 눈을 뜨는 그런 상황이 펼쳐졌으면.
내 친구들에게
by.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