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의 열여섯 번째 단어 : 중심
“회원님, 어깨에 힘 빼고 해 볼게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깨에 힘을 빼라는 거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눈에 보이는 동작들만 무작정 따라 했다. 그런 채로 바쁘게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이들은 잘만 하는 자세들도 뒷목이 뻐근해져서, 아니면 손목이 시큰거려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운동을 배울 때마다 어깨에 (혹은 상체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는 지적을 자주 들었다. 크로스 핏을 할 때도, 필라테스를 배울 때도, 복싱을 배울 때도 어깨에 힘을 빼라는 이야기는 꼭 한 번씩 들었던 것 같다. 운동이란 것을 정을 붙이기 시작한 지 2년 즈음, 이제야 ‘어깨에 힘이 들어갔구나’를 느끼고 스스로 자세를 고칠 수 있는 수준에 가까워진 듯하다.
요즘 나는 복싱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제 한 달을 겨우 나간 초짜 중에 초짜이지만, 샌드백을 팡팡 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재미있다. 하지만 역시나 복싱장에서도 어깨가 자꾸만 위로 올라간다는 지적을 받았다. 복싱의 기본자세는 양 무릎을 구부리고 왼쪽 발 뒤꿈치를 살짝 들고 있는 것이다. 이 자세를 유지하면서 다른 동작들을 해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펀치를 할 때 무릎이 펴지고, 어깨가 위로 올라가곤 했다. 선생님은 내게 무게중심이 너무 위쪽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무게중심이 가슴보다 아래에 있어야 더 재빠르고 강하게 펀치를 할 수 있다고. 선생님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단단하고 빠르게 느껴지는 반면 나의 움직임은 속도는 비슷한 듯하지만 어쩐지 팔랑팔랑 하는 멋없는 모양새인 이유가 바로 그래서였다. 거울에 비친 펀치를 하는 내 모습이 꼭 방방 뜨는 냥냥 펀치처럼 허접스러워 보여 헛웃음이 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 이유가 무게 중심이 위에 있어서였다.
내가 절대 지키지 못하는 일이면서 일기장에 매번 목표로 적어 대는 일이 있다. 바로 ‘느리게 말하기’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차분한 사람이 되는 것, 천천히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 나는 무게가 없는 말을 참 쉽게 내뱉어 버리곤 했다. 말하는 중간 갑자기 신이 잔뜩 나버려 빠르게 말하고, 과장된 표현들을 쓰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고. 너무나 가벼워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말을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을 때면 부끄러워서 다시는 가볍게 말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여러 번 다짐했다. 하지만 역시 고치기 쉽지 않은 나쁜 버릇이었다. 운동 중에 어깨에 힘을 빼고 무게중심을 낮추는 연습을 하면서 이 나쁜 버릇이 떠올랐다. 무게 없이 가벼운 말을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내 모습이 꼭 무게중심이 위에 있어 허우적대는 내 모습과 닮아 있는 듯했다. 운동이 끝나고 뒷목이 아픈 것도 왠지 자꾸만 어깨가 올라가는 것도 비슷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음의 무게중심을 낮추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일상에서도 코어 힘을 기르는 일이 필요하겠다고.
필라테스 선생님은 코어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매번 말씀하신다. 몸의 중심부인 복부, 엉덩이, 골반 근육, 우리의 모든 움직임의 시작점. 이 힘이 부족하면 무슨 동작을 하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아프지 말아야 할 관절들이 아프고, 큰 몸이 휘청댄다. 난 아직도 코어 힘이 완전하지 못해서 계속 휘청대고 부들대고 뒷목이 쉽게 뻐근해지곤 한다. 진짜 신체적인 의미의 코어든, 마음의 코어든 코어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멀고도 험하다. 언젠가는 꼭 가지고 싶다, 가지고 말 것이다. 단단한 코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