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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 janjan Nov 17. 2021

죽음을 앞둔 나에게 쓰는, 가상의 편지



안녕. 이건 끝에 대한 글이야.


2021년 11월. 잔잔의 <동선>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 끝, 한계, 마무리, 매듭 뭐 이런 것. 그래서 나는 인생의 끝에 가까워져 있는 나에게 편지를 써볼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 당연하게도 시작하자마자 머릿속은 기대와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질문으로 꽉 찼어. 나 잘 살았냐고, 행복하냐고, 후회하는 건 없냐고,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느냐고.


근데 문득 나의 끝을 상상해봤을 때 내가 받고 싶은 편지는 이게 아니더라고. 무책임한 과거의 인간이 마구 던지는 질문이나 기대가 가득한 편지? 벌써 읽기 싫어. 너도 그렇지.


그냥 지금, 요즘의 나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아마도 그게 더 재밌을걸. 웬만한 소설책보다는 내가 예전에 쓴 엉망진창 블로그가 더 재밌는 것처럼 말이야. 아무튼 그래, 나는 요즘 내가 되게 재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어. 자소서(ㄹ)와 이력서를 쓰고 있거든. 그 어느 때 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이리저리 돌려보는 날들이야. 그거 아니 나에 대해 좋게 쓰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나의 허접한 현실이 눈에 너무나 잘 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 나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촘촘하게 돌아보면서 자꾸만 남은 어른의 삶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다는 생각에 아득해질 때가 있어. (사실 자주, 책상에 앉을 때, 떨어질 확률이 80%는 넘어 보이는 회사의 입사 후 계획을 써야 할 때마다.)


2021년 11월의 나는 끝은 어쩌면 해방일 거라는 생각을 해. 

아마도 두려운 해방. 두려우면서도'겨우 살아냈다'라고 안도할 것 같아. 아니 사실은 안도하고 싶어. 죽음을 피해 영생을 찾는 사람들보단 죽음이 해방이라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삶이 사실은 더 단단했지 않을까? 이미 이룬 게 너무 많아 죽기 아까운 삶이라고 해도 말이야. 영생을 위해 온갖 나쁜 짓은 다한 볼드모트도 그 난리를 쳐도 덤블도어보다 일찍 죽었잖아. 나쁜 짓해서 얻은 희어 멀 건한 대머리는 덤이고... 아무튼. 


영화를 보면서 아주 나이 든 배우가 죽는 연기를 할 때 어떤 기분일까 주제넘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 늙어서 병상에 있다가 죽는 연기 말이야. 처음엔 무섭거나 끔찍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그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게 조금은 부럽더라고. (물론 그들의 실제 삶과는 전혀 다른, 앞에 카메라가 수십대가 있겠지만, 그래도.) 너는 이걸 보고 코웃음 칠 수도 있겠다. 사는 건 수십 년짜리 팀플 같다고 느껴지는 건 아직 내가 너무 학생이라 그런 건가?


2021년의 내가 한 생각들을 너는 다 잊었을 수도 있겠지. 너무 치열하게 사느라 다 날아가버렸을 수도 있고. 근데 혹시 두렵다면 이것만 기억 해내 봐. 곧 해방이라고! 아주 길고 이상하고 어렵고 엉망진창인 과제가 곧 끝난다고. 


안녕! 이건 너의 끝을 위한 글이야!



2021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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