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정한 마음 Sep 26. 2020

육아 상담을 다녀와서_


오후 2시, 예약해둔 시간에 맞춰 시에서 운영하는 육아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십 오분쯤 일찍 도착한 나는 좀 긴장한 상태였고, 차 안에서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며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머릿속에 뒤엉켜있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내려 재차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는 그저 마음을 내려놓기로 한다. 순리대로 가자. 내 마음이 응하는 방향대로 풀어 가면 되지 않겠나..






아이가 한창 기기 시작할 무렵 친구 엄마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시설도 훌륭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자차로 이동하기에도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주차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발길이 닿지 않았는데, 육아가 너무 힘에 부쳐 상담을 받아볼까 알아보던 즈음 센터에서 무료 상담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상담 신청을 하고 날짜를 미리 예약하면 대면 상담도 가능한 시스템이었는데, 그땐 그런 절차마저도 번거롭게 느껴질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담을 가려면 아이를 어른들께 또 맡겨야 했기에 역시 발걸음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니 실은 그보다도, 짧은 몇 회의 상담으로 내 육아의 고됨을 풀어내고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깊이 몰려왔기 때문일 게다. 그래, 그때도 참 힘들었지.. 오 년 남짓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어느 때도 힘들지 않았던 날이 없었다. 진심 그러했다.
내가 모든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다시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 힘듦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육아가 너무 버겁고 힘이 든다.



J야, 너에게 많이 미안하지만 엄마는 엄마인 게
참 힘이 들어. 엄마도 이번 생애 엄마가
처음이라 그런가 봐..




입구에서 친절한 직원분이 체온계로 열 체크를 하고 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시간 맞춰 올라온다는 것이 시계를 보니 아직도 십 분이 남았다. 상담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빈방에 먼저 들어가 있는 것도 예의는 아닌듯하여 화장실을 먼저 다녀왔다. 건물 내부는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지나치리만큼 깨끗하고 반듯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크고 널찍한 놀이공간과 구석구석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정렬된 시설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만 있었어도 종종 이용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상담실로 들어갔다.

5평 남짓의 상담실은 좌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상담사와 내담자가 매우 밀착된 거리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또 충분히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마실 것을 권하시기에 마다하지 않고 믹스커피를 한잔 태워와 자리에 앉았다. 하루에 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일은 나로선 매우 드문 일이긴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으려면 따뜻한 커피 한잔이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상담실을 나올 땐 반도 채 마시지 못하고 식어버린 커피를 원샷해야 했지만..

오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상담사는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십대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지닌 분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 못지않게 내담자도 상대의 얼굴 생김새와 몸짓에서 베어 나오는 분위기를 빠르게 훑는다. 이 자에게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도 되는 것인지 가만히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치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내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이건 간에 나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불쑥 꺼내어 놓는다. 그것은 아이를 낳은 후 내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였다. 사정없이 두 뺨 위를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는 순간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담을 신청한 지난 금요일, 나는 두 페이지에 걸친 글을 쉬지 않고 써 내려갔다. ‘나는 왜 육아가 힘든가? 더 분명하게는, 나는 왜 너와의 관계가 이리도 힘이 드는 것인가.’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글을 마치 연필로 휘갈기듯 자판으로 옮겼다.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과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내고 나면 한결 후련하기도 할 것이고 무엇보다 짧은 상담시간 안에 내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꼭 얻으리라는 간절함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준비된 물음을 안고 왔으나 자꾸만 내 안에서 맴도는 그것들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상담사는 자꾸 내게 힐난하듯 묻고 나는 해명하듯 답을 찾고 있었다. 왜 내가 해명해야 되지? 나는 충분히 힘들었는데, 긴 시간 고민해온 그 모든 것들이 내 탓이라 자책하길 멈추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일 진데 그녀는 왜 나를 이리 가혹하게 대하는가. 내 안에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들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음에 자꾸만 무력감이 더해갔다. 어쩌면 그 또한 상담사가 의도한 바였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 시간 동안 내 안에 차오르는 감정들과 정직하게 대면할 기회는 얻었으니 얻은 바는 분명 있었다. 다음 예약일을 정한 후 부모 기질과 양육태도를 판단하는 두 검사지를 받아 들고 상담실을 나왔다.

아, 상담실을 나오기 직전 그녀가 내게 물었다.
"가르치는 직업이시죠? 무슨 과목인가요?"
"국어.. 가르쳐요."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갸우뚱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되물었다.
"영어나 수학을 가르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국어쌤이면 좀 감정이 풍부하지 않나?"
난 애써 어색한 웃음을 감추며 말했다.
"밖에서는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긴 한데, 제가 유독 가족들에게는 감정표현에 인색한가 봐요.. "

나는 그녀에게 왜 굳이 그런 변명까지 해야 했나? 그런 얘긴 평생 처음 들어본다고, 지금 내 안의 감정들이 너무 손 쓸 수 없을 만치 얽혀버려서 그걸 끄집어낼 재간이 없었다고. 왜 그렇게 답하지 못했나 하며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밀려온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참 눈물을 쏟아내고 난 후였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아이와 나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언이나 양육법이 아니라 ‘괜찮다고, 엄마 당신 탓이 아니라고’ 내 존재에 대한 인정과 진심 어린 다독임이었음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끄덕이며 눈물을 주워 삼켰다.

다행히 상담사가 알려준 몇 가지 조언들은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그 날에도 당장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녀는 내게 아이의 문제 행동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 그 자체를 바라보라 했다. 아이의 장난기 어린 눈빛과 웃음, 예의 그 쾌활한 목소리가 마치 은빛 가루를 뿌려 놓은 듯 사방에 반짝반짝 흘러넘쳤다. 차분하고 그윽하게 그 장면을 멈춘 듯 응시하며 평온한 아이의 세계로 슬며시 발을 옮긴다. 어쩌면 그간 너무 오래 잊고 지냈구나.. 엄마는 엄마의 세계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너의 세계로 건너가는 법을 잊고 지냈던 게로구나.. 새삼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제 좀 컸으니 엄마의 시간을 좀 허락해달라고 나는 자꾸만 달라붙는 아이와의 간격을 넓혀가던 중이었다.
엄마는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꿈 많은 십 대 소녀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자꾸만 조급해지고 점점 내 시야에서 네가 벗어나고 그래서 종종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곤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너의 세계로 드는 그 길목에서 잠시 길을 잃었나 보다. 엄마가 방황하는 시간 동안 기다려주고 다시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언제나처럼 포근한 살결과 따스한 뺨에 얼굴을 부빌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야..

평화로운 깨달음의 시간도 잠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어김없이 몇 번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그 밤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나는 좀 가벼워졌고 더 담담해졌다. 아이를 쓰다듬은 따스한 손길을 옮겨 나의 내면 아이를 쓰다듬어준다.




그래, 우리 함께 성장하자.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는 만큼 너의 세계도 함께 넓어질 테니 조급해하지 말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이 순간들을 우리
오롯이 함께 누리자.




글쓰는 엄마 뒤에서 오늘도 착하게(?) 호작질 중
작가의 이전글 디톡스가 필요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