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도닥인 할머니 손길
아이가 태어날 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바빴다. 혹시 아기에게 필요한 걸 빠뜨렸을까 봐 걱정됐다. 배냇저고리부터 아기 침대까지 택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왔다. 물건을 집 안 곳곳에 두면서 아이가 사는 우리 집을 그려봤다. 선배맘들에게 추천받은 육아서도 잔뜩 사서 읽었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아이를 키우는 나의 하루를 상상했다. 출산 준비물도 야무지게 챙기고, 책도 읽으면 마음이 좀 편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잘할 수 있을까. 잘 키울 수 있을까.’ 이 생각만 도돌이표처럼 맴돌았다.
아기가 태어났다. 3 kg도 안 되는 몸무게와 50cm의 작은 키, 조막만 하고 귀여운 얼굴을 보는 순간 출산의 고통을 잊었다. 새 생명의 존재는 경이로움과 기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내가 아이의 존재만으로 행복해했던 순간은 희미해졌다. 아이가 밤새 꺽꺽 우는 이유를 몰라 애가 탔고, 아이가 바닥에 드러누워 떼를 쓰면 나도 주저앉고 싶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 먼지를 쓸어내지 못한 채 어느덧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셋을 데리고 집 앞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아기띠를 메고 3살, 4살 꼬꼬마의 손을 잡고 있으니 비 오듯 땀이 흘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 착 붙은 머리카락. ‘난 얘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것인가.’ 하며 잔뜩 심란한 마음까지. 내 겉도 속도 참 초라했다. 그때 누가 날 향해 말했다. “아이고, 애국자다!” “새댁이 대단하네!” “너거들 나중에 크면 엄마한테 잘 해라이.”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부채질하시던 할머니들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갑자기 한 할머니가 일어나시더니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게 아닌가. 마치 자기 딸에게 하듯, 장하다고, 대견하다고. ‘모르는 사람 엉덩이를 이렇게 쳐도 되는 건가. 근데 저 할머니들은 왜 나를 대단하다고 하는 걸까. 내 속도 모르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막막함과 불확실함을 감수하고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엉덩이를 톡톡 치던 할머니의 손길이 오래 묵혀뒀던 내 걱정 뭉치를 팡팡 털어주는 듯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위대한 엄마는 따로 있지 않아. 모든 엄마는 위대하지.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도 당연해. 그 아이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지.”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렇다. 양육의 책임감은 엄마를 더 성실하게 만들고, 양육의 막막함은 엄마를 더 단단하게 한다. 그날 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 곳곳에 놓인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고. 엄마라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마음 가득 담으며 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