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3 퇴근길에 남기는 하루인사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에게 건네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오른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가동되는 열차 내 에어컨은 시간의 흐름을 가늠케 한다.
퇴근은 했으나 마음은 여전히 몇 가지 업무와 직원에게 향해있다. 가족에게로 가는 이 길인데 나는 꽤 자주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아빠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데 여전히 난 이사님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해결하지 못한 몇 가지 문제들은 벚꽃이 만개하고 초록으로 뒤덮이는 시간 속에서도 여전할 것 같은데 너희들은 변함없이 '온전한' 아빠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가장의 의무라는 뻔한 말 대신 미안함을 뒤로 숨겨 가벼운 미소로 화답할 뿐이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한 너희들이 언제까지 아빠의 존재를 지금처럼 기다리고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한 학년 올라가고 고학년이 되면 많이들 바뀐다고 하는데, 여전히 너희들만은 날 찾아주길 바란다. 나는 변하려 하지 않는데 말이다. 적정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다. 일과 가정 그리고 개인의 삶의 삼각편대가 늘 안정된 인생이 가능한 것인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고, 가장으로서의 기능(?)을 잘 해내기 위해 그 균형은 잠시 잊어도 혹은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번 무너진 균형은 탄력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조직에서의 책임감이라는 변명으로 이게 최선임을 가족에게 특히 너희 엄마에게 주지 시키곤 했다. 그래도 잘 벌어오니 좋지 않냐는 말로 말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책임감은 그곳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되려 더 막중한 임무가 가족을 향해 있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열차는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그래도 오늘 하루, 정신없이 바쁘고 심리적으로 높은 압박을 주는 의사결정을 하고 팀원들을 챙기고 많은 팀과 협업을 조율하고 단기 프로젝트의 구조를 짰으며 몇몇 포지션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만족스러운 하루였는지 물어본다면 시원하게 그렇다 얘기하긴 어렵겠으나, 아름다웠다.
지난 분기 매출액에 대한 예상 오류를 찾아 수정한 순간, 오늘 내가 쏟을 수 있는 마지막 에너지가 투입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곤 내일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하고 길을 나섰다. 꼬박 12시간 나는 아빠가 아닌 직장인으로 살았고 새로운 경험들이 더러 있었던 오늘에 감사했다.
언젠가 너희들의 하루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으나 시간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해석할 줄 아는 성숙함이 함께이길 바란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걸으며 맞는 4월 초봄의 공기가 나를 안아주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