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즈음하여
결혼 10주년을 넘어선 우리 부부에게 최대난제이자 2025년 한 해를 지배할 화두는 다이어트다. 비단 올해뿐이었겠는가.
삶 또한 그렇겠으나 진심으로 몰입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이며 여기에 비법이란 것은 없다. 아무리 TV에서 유명한 트레이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떠들어도 행동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이 건강한 다이어트에 이르는 정도이다.
아내는 월수금 오전에 요가를 간다. 근처 시민회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20여 명 되는 인원이 수업을 받는다. 평균적으로 매회 참석인원은 15~16명 정도 되고 전원 출석한 경우는 한번 정도라고 하니 꾸준한 운동습관을 갖는 것이 누구나 쉬운 일은 아니다. 아내가 요가를 시작한 계기가 다이어트는 아니었다. 체형이 안 좋아서 요가를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체형이 잡히며 근력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아내말로는 망가져 있던 몸상태, 그러니까 처음 요가를 갔을 때의 상태를 1이라고 하면 현재는 4 정도가 된다고 한다. 배운 지 벌써 1년이 넘었는데 강사분이 마음에 들어, 간혹 수업에 빠지는 경우가 생겨도 계속해서 등록하고 다니게 된다고 했다. 매일보고 같이 사는 입장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지만, 무엇이 개선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난 확실하다. 살은 쪘다. 그녀도 찌고 나도 쪘다. 우리는 단합이 잘되는 부부였다.
아내는 활동량이 많은 사람이다. 일을 하지 않지만, 두 아이의 등하교 및 학원 픽드롭을 혼자 해냈다.(아이들이 크면서 등하교를 직접 해주는 경우는 줄었다. 대신 차가 없는 관계로 바로 학원을 가거나 하는 경우, 간식거리를 들고 학교 앞으로 가서 함께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지금은 나 역시도 집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아내에게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인가? 조금씩 귀찮아서 나를 내보낸다. 도서관에서 예약도서를 받아오거나 반납하는 것, 아이들 학원이 마치는 시간에 데리러 가라는 것, 커피셔틀이야 늘 하던 것이고, 기타 등등의 상황에서 아내는 나를 적절히 활용 중이다. 어찌 되었건 다이어트에 도움이 안 될 선택은 분명할 것이다. 본인의 활동량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으니 먹지 않겠다는 양심적인 생각을 하진 않으니 말이다. 아주 가끔 거실에서 요가매트를 깔고 땀을 뻘뻘 흘리고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영상을 보며 따라 한다. 유튜브였던 것 같다. 요즘 이런저런 영상들이 많으니 따라 하다 보면 15분만 지나도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문제는 이런 날이 아내에겐 광복절이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 간혹 설 명절과 추석 전후로 두어 번 있기도 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여 광명을 찾으려면 1년에 한 번 정도 쉬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 아내에겐 그렇게 할 수 없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바로 ‘나’, 남편 때문임을 알고 있다.
아내는 오후 12시까지 혹은 12시 이후에도 라테 한잔만 마시면서도 잘 보낸다.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여 신혼 초에 이걸로 말다툼이 심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보통 늦게 일어나면 새벽 6시, 대게 4시 반에서 5시에 기상하는 내가 12시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는 7시간이 넘는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식탐마저 있는 나에겐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혼 전까지 매일 새벽, 아침 식사를 차려주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고 이는 아버지 또한 평생 새벽에 아침식사를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덕분에 난 그것이 습관이 된 것이고. 이에 비해 프리한 분위기의 처가에서 자란 아내는 아침을 굳이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혼 초 첫 난관이었는데 나의 이해와 아내의 노력으로 적절한 선의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십 년을 부대끼며 우리는 서로 둥글둥글해졌다. 그럴 수 있다,는 이해의 폭과 더불어 우리의 얼굴과 뱃살 그리고 엉덩이마저도.
궁금해졌다. 결혼 전 매일 퇴근 후 1시간씩 러닝머신을 뛰던 아내였다. 심지어 회식이 있는 날도 퇴근 후 회식시간 전까지 러닝머신을 뛰던 그녀다. 무엇 때문에 아내도, 나도 결혼 전의 건강을 지키던 좋은 습관들에서 멀어졌던 것일까. 난 그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영역을 이제 '우리'라는 부부의 영역으로 옮겨와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 결혼생활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서로 신뢰하며 안정적인 부부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전의 습관과 패턴은 변화해야 함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혼자였을 때 유지하던 건강한 습관들을 많이 잃었다. 나로서는 매일 2시간씩 걷고 달리던 것, 아내는 등산을 가고 러닝머신 위에서 한 시간을 알차게 달리던 것. 그리고 그 자리엔 부부의 영역으로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겨버렸다.
우리가 선호하는 배달음식 메뉴는 다양하지 않다. 매번 시키는 걸 시킨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경우 두 종류의 음식을 시키기도 한다. 이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을 줄이고 역시나 '편한' 선택을 한 것이다. 활동량이 줄어 몸이 '편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다이어트와는 반대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냉정하게 이 과정을 살펴보면 8:2 정도로 나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10시에 출근하여 저녁 7시에 퇴근하고 집에서 오면 8시 반. 저녁을 먹고 오는 날도 간혹 있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이었으니 이때 집에 오면 배가 안 고플 리가 없다.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뭐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시간에 밥을 또 차려달라고 말하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아이들과 아내는 6시면 식사가 가능한데 내가 오면 두 번의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업무가 고된 만큼 아내가 두 아이를 케어하는 것 역시 나 못지않은 에너지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더 당당히 말한다. 배달시키자고.
아내는 중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알곱창과 계란찜, 주먹밥(이건 아이들 용이다). 후식으로 요거트 아이스크림 혹은 시원한 라테와 후식용 빵. 나는 이에 비해 아이들 입맛에 가깝다. 피자 치킨 햄버거로 수렴하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제안을 누가 하든 거절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역시나 단합이 잘된다. 반추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이 내가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아내의 다이어트를 실패하게 만든 중차대한 원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결과 또한 공평하게 나눠가졌다. 부부의 동반비만.
일단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문제의 원인을 알고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니 다이어트의 반은 이룬 셈인가 싶다. 하여 난 아내에게 제안하고 싶다.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의 러닝머신에서 일단 걷기부터 시작하자고 말이다. 야식도 함께 하는데 운동은 함께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2) 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