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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식물을 키운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자라

by Johnstory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아내는 많은 식물들을 떠나보냈다.



그 마음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겐 책을 정리하고 처분하는 일이 괴로웠던 것처럼 아내에겐 식물들이 그런 대상이었다. 이사오기 전에 다 죽어가던 금전수도, 부모님 댁에서 싹을 틔우지 못했던 고무나무도, 비실했던 몬스테라를 나눔 받은 이후에도 모든 식물들은 잘 성장했다. 그런 식물들을 보며 우리는 늘 기분 좋게 말했다.



진짜 이 집 오고 나서 좋은 일만 있으려나 봐



생각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는 하지만, 식물들이 보여주는 좋은 느낌의 징조들은 삶에 활력이었다. 물 한번 제대로 준 적 없는 나로서도 그렇게 잘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이사오기 전 내가 예상했던 거실의 풍경은 이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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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통창으로부터 아침 햇빛이 쏟아지고, 그 옆에 큰 고무나무 한두 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스티브잡스가 썼을 법한 명상용 스탠드 정도면 완벽한 거실일 거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대략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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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그리되지 못했다.


우리의 집은 나만의 집이 아니고, 커가는 아이들이 생활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나나 아내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했고, 그럼에도 누군가 '널브러져' 있는 곳이 되지는 않길 바랐다. (그래서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거실에 소파는 없다.) 거실에는 작은 식물들 그리고 77인치 벽걸이 TV가 있다. 춥지도 덥지도, 오히려 약간 쌀쌀할 정도의 집안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터라 걱정을 한 적도 있었지만 식물들은 잘 자란다. 무엇보다 동남향인 우리 집엔 아침 해가 넘치도록 차고 든다. 가끔은 궂은 날씨를 대비할 수 있도록 식물등도 갖추어 놓았다. 아주 전문적인 설비를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식물들이 살기에 부족한 환경은 아닐 것이다. 주기적으로 아내는 베란다로 가서 식물들을 관리한다. 정확히 이것이 어떤 '관리'인지는 잘 모르지만, 흙도 바꿔주고 화분도 교체한다. 어디선가 배양토도 잔뜩 사 온다. 혼자 들기도 어려운 것들로 아내는 시간을 보내는데, 말없이 행복해 보인다. 식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풍요로움이 있을 것이다.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반려식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생명이 있는 대상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말로 다 설명하긴 불가능할 것이다.


무던한 아내는 이런 작업을 할 때에도 조용하다. 그런 아내를 관찰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물었는데 아내는 대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대답을 내게 주었다.



아무 생각 안 하는데? 그러려고 하는 거야



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식물들이 새로운 화물과 배양토를 받아들이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라도 한다는 얘길 기대했던 것이란 말인가. 아내에겐 마치 식물을 키우는 것이 명상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현존하는 대상으로 식물을 대하고 지금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들숨과 날숨처럼 지금 이 순간 실재하는 상태로서 식물을 대하는 아내가 다른 별에 기거 중인 우주인 같기도 했다. 이 글을 마친 후에도 아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식물을 관리한다는 의미를 좀 더 깊게 고민해 봐야겠다. 나에게 식물은 미지의 세계다. 두 아이를 대할 때에도 이런 내공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 부부는 아직 멀었다. 식물에 대한 애정과 자녀에 대한 애정의 본질이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사심을 거두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3년 전에 회사 앞에서 직접 구입한 금전수를 퇴사하고 데려왔는데, 이는 아내의 강력한 권유로 인한 것이었다. 가급적 나눌 수 있는 물건들은 적당한 주인을 찾아주었는데, 금전수만큼은 아내가 들고 오라 했다. 그렇게 예전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나둘 잎들이 시들어 갔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싹이 돋기 시작했고, 그해 우리는 청약에 당첨되어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식물과 우리 삶의 흐름이 맞닿아 있다고 느낀 첫 순간이었다. 그 금전수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고, 얼마 전 새로운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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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수


아내는 식물을 키운다.

그리고 아내가 키우는 모든 식물은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또 어떤 좋은 일들이 우리에게 생길지 기대 또한 커진다. 식물의 나고 짐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빛을 보고 바람을 쐬고 물을 머금은 시간들의 누적은 생육을 돕는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매일의 식물 관리가 내가 하는 자기 계발과 다르지 않았다.



아내가 키운 것은, 우리 가족의 건강과 화목, 풍요 그리고 행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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