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의 외출은 내게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커피를 사러가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든 늘 그곳엔 '동네 엄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평일 오전이란 특수한 시간대의 정의가 대체적으로 '일 나갔을 시간'으로 풀이되기에 그 시간에 집에 있는 사십 대 가장의 등 뒤에 꽂히는 시선이 따갑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의 삶에 별 관심 없을 완벽한 타인이 아닌 동네 엄마들은, 나의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어떤 식으로든 접점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나마 같은 아파트 단지 내의 학부모들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아내였는데 최근 독서 모임부터 아이들 교육 관련 모임에 참석하며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는 학부모들이 늘었다. 많은 시간 집에서 일하고 글 쓰고 운동하는 내겐 부담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 난 사적인 모임을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한두 번 마음 맞는 이들끼리 가볍게 술 한잔 하는 것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겠으나,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을 늘 경계했고 그로부터 사고가 발생하거나 하면 관련된 이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었다.
은행에 근무할 때에도 동문회를 나가지 않은 것으로 당시 학교 대선배였던 지점장님께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끌어주고 당겨주고 하는 것은 학교 다닐 때가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회사를 벗어나, 이제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그런 모임이 생겨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이 불편했다. 자녀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받고 가끔 커피를 마시며 안부를 묻는 정도의 교류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찬성이다. 아내 역시 집에서 얻은 마음의 짐들을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필요는 있을 테니. 그리고 그 대상이 남편이 될 확률은 극도로 낮은 것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게 그런 모임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대부분이 가십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 최근 커뮤니티에 올라온 동네의 이슈들, 화제성 이야깃거리가 주된 대화의 내용이다. 즉, 누구든 그런 모임에선 안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건강한 모임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임의 본질을 지키고 그 목적을 분명히 하는, 그런 모임 말이다.
얼마 전에 첫째 딸아이의 친구들과 관련된 일들로 브런치에 써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관계를 우리 어른들 또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아내 역시 그 선을 지키려 하고 있음이 고맙다. 최근에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기에, 더더욱 누군가와 어울릴 수 있는 절대적 시간도 줄었다.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준비를 한다. 노트북과 프린터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목표가 분명하니 무리를 지을 이유도 없다. 공부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결국 학습은 혼자만의 몫이다.
https://brunch.co.kr/@experiencer/557
팀을 이루어 모임을 갖고 주기적으로 만나는 동네 엄마들 또한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임이 언제 어떻게 진행되든 사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 모임을 불편해할 이유도 권리도 없다.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평일 오전, 그들이 있는 공간을 지나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은 내겐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들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인사도 주고받는다. 그래도 대여섯 분의 동네 엄마들을 한 번에 만나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버겁다. 누구와 눈을 마주쳐야 할지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가급적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전히 난 집에서 일하고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새벽엔 동네를 40분가량 달리고 있으며,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사고 근처의 도서관엘 간다. 동선이 뻔하기에 새로운 이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평일에 집에 있는 남편이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엔.
갈수록 협소해지는 인간관계와, 그와는 반대로 부각되는 나 자신의 삶 한가운데에 누군가와의 인연으로 얼굴은 아는 '동네주민'이 되어버린 동네 엄마들을 조금은 더 편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