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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는 거짓말

by Johnstory

쉬어가는 것도 중독이 된다.



휴식이 길어지면 늘어지게 마련이고 현실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고 날짜가 지나가는 것에 무감각해진다. 어영부영 보내다 보면 금방 저녁 8시가 지나간다. TV로 뉴스 좀 보다 빈둥거리면 슬슬 눈이 감긴다. 여전히 무언가 시도하지 못하고 시작하지 못한 채로 지나간 하루를 보내고 다시 마주하기를 여러 달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날 위로하게 된다. 어디선가 봤던 '완벽주의'와 같은 그런 말들로.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극소수의 사람들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냉정하게 이 상황들을 예리하게 절단하여 살펴보면, 나 자신의 게으름이 더 크게 보인다. 쉼에 익숙해지고, 난 그간 오래 지쳐있었고, 정말이지 할 만큼 한 것 같고, 재충전의 시간을 조금 더 가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생각들이 불려진 먼지처럼 머릿속을 굴러다니게 되면 난 외부와의 단절에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삶도 의미가 있고 꽤나 괜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니 모든 것이 열려있다. 이성보다 본능에 가까운 생활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게으름이라는 안락함을 놓아버리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시작하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일들을 해온 것 같은데, 막상 그 안에서 정수를 끄집어내려다 보니 짙은 안갯속에서 보이지 않는 앞으로 계속해서 발을 내딛는 것만 같다. 그러니 다시 또 주저앉는다. 주 7일 매일 12시간 이상을 일할 땐 그렇게 도망치고 싶던 기계적인 일상이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휴식이 예상외로 길어지다 보면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이때에 할 수 있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지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되도록이면 업무 전문성과 관련된 기록을 남기는 일 말이다.



쉬어보니 알겠다.


한때는 유용했고, 지금도 아주 가끔씩 유용한 휴대전화와 맥북이 게으름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이 또한 모두 나의 생각과 태도의 문제겠지만 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일조하는 장치가 주위에 없다면 스스로의 설계에 따라 영양가 있는 시간들로만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그런 행위들, 그리고 지난 시간들 가운데 내게 영감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던 사건들,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록하는 것으로 매일을 쌓아간다면 게으름보다 작은 성취의 반복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게으름을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섣불리 진단하지 말고 자신에게 생산적인 일들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패턴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면 나의 휴식은 조금 더 감사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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