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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당신의 업적입니까

by Johnstory

정답을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 정답도 꽤나 이뻐 보이고 무릎을 치게 하는 정답으로 잘 다듬는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어가며 사는 것이 실력이라 믿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의 현실적 한계를 '정답을 잘 이야기함'으로 넘어서고자 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오는 길의 4할 정도는 그런 시간들이 제대로 작동함으로 만들어진 경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또 다른 정답을 구상하고 있는 와중에 내면의 정의가 나를 가로막아 이 글을 쓰도록 이끌어주었음에 감사한다.



며칠 뒤면, 어쩌면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될지도 모를 미팅을 앞두고 있다.



그간 나의 공과 업적이 진정 나만의 것이었는지, 그 과정에서 나의 지분은 이성적으로 어느 정도에 도달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멋들어지게 보일 수 있는 일들엔 운이 따랐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나의 주도가, 간섭 혹은 개입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런 얘기를 정답으로 포장된 무용담으로 늘어놓을 수가 없다.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나는 이제, 오답일지언정 나의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럽게 눈치 보며 처세를 위한 시나리오를 사전에 계획하는 우둔함을 경계해야 한다. 이제는 나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 설 수 없는 곳이라면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솔직해져야 한다. 그래서 나의 또 다른 시작은 시간이 걸리는 중이다.




먹고사는 일, 가족을 책임지고 가정을 바로 세우는 일,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것. 마흔다섯이 되는 외벌이 가장은 적절한 타협과 노련한 포장이 미덕일 것인데 그런 재주도 없다 보니 만나야 할 사람들만 늘어난다. 그래도 끊임없이 새로운 만남이 예정되고 또 다른 기회들이 찾아오는 연유는, 내 주위의 사람들 덕이다. 오랜 인연이든 짧은 인연이든 새롭게 알게 된 인연이든 가까운 곳에 고마운 이들 덕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난다. 이 또한 나의 운이고 복이다. 또 하나의 발견이 이루어진다.


그래, 주위에 좋은 사람들 그러니까 나의 일에 도움을 주는 이들이 늘 함께했다는 것도 내세울만한 업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건 굳이 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도 힘이 실린다. 나의 커리어 흐름은 내가 만들어왔다기보다 감사하고 신기한 인연으로 비로소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 나의 뜻대로 흘러갔던 적이 없었다. 외교관을 꿈꾸던 평범한 대학생은 은행원이 되었고, 진정한 영업인이 되었으며 한 기업이 뉴욕시장에 사장하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함께했고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 되기까지 고마운 인연이 나를 끌어당긴 힘은 실로 강했다. 그들이 나를 끌어당긴 것인지 내가 그들을 내 가까이로 불렀는지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나 가장 큰 성과를 내고 빠르게 성장하며 성공하는 순간에나 늘 고마운 인연이 함께 했다. 이 또한 재주고 능력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을까.


새로운 만남을 물리지 않고 교류할 수 있음에 늘 감사했다. 더러 좋지 못한 관계로 끝맺음조차 명확지 못한 적도 많았으나 그럼에도 피한 적은 없었다. 또한 나의 품에서 함께 하게 된 이들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존중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장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관심이 가게 되고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나날이 느끼고 경험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조직의 큰 성공을 위해서는 개별적인 업무 역량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무언가'가 필요한 때에 잘 발현될 수 있도록 결집하고 흩어지고 또다시 함께하는 그 과정의 앞단에 있었다. 운이 좋았다. 누군가로 인해 그런 기회를 받게 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나를 인터뷰했던 실무진부터 CEO 및 임원진 모두의 평가의 합으로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제한된 시간 동안 20년 가까운 세월의 업무 경험과 깨달음의 내용 모두를 경영진들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감사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어떤 연유에선지 살면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 그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치열하게 살아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실패가 많았지만 성공 또한 경험했고 이 모든 것은 사람과 상황과 나의 운과 노력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라는 요소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잘 풀리는 어느 순간에도, 또 그렇지 못한 좌절과 고난의 순간에도 모든 결과의 이유가 '나만의 업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나의 의도로 해낼 수 있는 것-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장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단련한 나의 시간과 노력들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최상의 마음 상태를 유지해도 풀리지 않을 일들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럴 때에도 상황을 인정하고 나는 또 나의 길을 가야 한다. 이런 수용과 반복 그리고 일상적인 자기 수양의 노력들은 지난 20여 년간 빛을 보기도 끝없는 어둠의 터널을 걷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인생의 모험과 즐거움에는 늘 인연의 힘이 작용했고 지금도 역시 한순간도 예상치 못했던 인연의 힘으로 새로운 기회와 만남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라던 결과를 위해 정답을 주조해 내려는 무모함은 내려놓은 대신 '업적'을 만들어주었던 지난 시간들의 감사한 여러 요인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과 배포를 취했다. 자신감이란 인위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과 생각을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같은 어조로 전달해 낼 수 있는 내면의 강인 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진정 인생의 업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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