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사님 말고 아빠 말고 나로 살아보는 중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by Johnstory

내 인생 가장 조용하고 평온했던 시간이 끝나간다.


인생의 오랜 선배들은, 멀리 보지 않아도 나의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30년을 넘게 현역이셨고 아버지는 여전히 현역이시다. 54년생임을 감안하면 칠순이 지난 지금에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에 비해 20여 년의 경력으로 번아웃이니 인생의 쓴맛을 다 봤다느니 떠들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심플하게 정리했다.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고.


부모가 아들의 삶을, 남은 인생을, 그리고 나머지의 행복을 책임져줄 수는 없는 것이니까. 물론 뼛속깊이 존경한다. 하지만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선택이 있었고, 나는 지금의 내가 바라는 선택을 한다. 계획적이고 치밀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삶을 지향하며 동경하시는 아버지와 난 너무나도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나의 명함을 채웠던 이사님 말고, 아빠로서의 비중을 높이는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이 시간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늘 그래왔듯 우리의 인생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내 마음에 솔직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이 가장 나다운 선택임을 깨닫게 될 때 나는 어제보다 더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그 시기가 언제이든, 이른 감이 있거나 좀 늦은 감이 있더라도 이사님 말고 아빠 말고 나로 한번 살아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 또한 나의 인생을 대신하여 살아줄 수 없고 나 자신의 선택을 그들에게 맡길 수도 없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고. 각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며 구성원으로서 고유의 가치를 발산할 수 있다면, 나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특정기간 동안의 이러한 작업은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나로 살기 여정은 그리하여 곧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물론 나로만 살아온 시간은 두 아이의 방학과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 가운데에 있다. 홀로 오지로 떠난다던가,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은 곳으로의 이동이 아닌 이상 내가 보낸 시간 이상의 독립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불필요한 모임과 멀어지고 친구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우선하며 나를 마주했던 시간들은 이후의 삶의 여정에서도 이전과는 단단한 나로 살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바라던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축사를 떠올린다. 이 말의 의미를 자연인이 된 지금에서야, 마흔 중반이 된 이제야 알게 됨이 부끄러우나 다시 한번 나대로 잘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은 축복이 아니겠는가.



keyword
이전 18화이게 정말 당신의 업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