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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by Johnstory

그러니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인생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오늘 하루 나의 모습대로 살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면 그뿐이다. 성공 그리고 성장에 목매달고 미친놈처럼 달려드는 인생이 고귀하고 멋진 것이라 생각하던 나의 생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자의적으로 숨 고르기를 선택하던 때부터였다. 열심히 사는 것을 조금 내려두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삶을 지워버리고, 체계적으로 도구(이를테면 기록을 위한 메모 혹은 글쓰기)를 활용하고 그에 집착하던 생활을 그냥 흘려보냈다. 조금은 더 감각적으로, 감정에 충실하고, 내면의 고요와 소동 모두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삶처럼 나의 것 또한 그렇게 치열하고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선택하고 얻게 된 가장 큰 소득은 불필요한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는 것.



셈이 복잡해지고 나다움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는 출발점은, 많은 경우 비교에서부터였다. 바깥세상에서는 빛이 비치는 쪽으로 대부분 움직인다. 좋아 보이는 것, 소위 말하는 fancy 해 보이는 것을 타깃으로 정한다. 실로 그것은 멋지다. 나름의 계획을 세워 그것을 손에 넣을 방법을 강구하다, 꽤나 그럴듯한 시나리오도 나오고 함께하는 이들도 하나둘 곁에 늘어간다. 많은 일들을 겪고, 그것만큼이나 많은 경우 애초에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배는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과정에서 나름의 작은 성취를 맛보기도 한다. 그러다 좋은 그림이 나올 때면 마치 의도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노력도 해본다. 내실보다 외형에 집착한다. 인연과 운이 가진 힘을 간과하며 많은 것이 자신의 능력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큰 실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나에게 주어진 그릇으로 살기로 마음먹을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 내가 존재해야 하는 목적을 알게 된다. 바깥세상이 아닌 내면의 세계에 눈을 돌릴 때 지금까지의 무거운 마음이 내가 짊어질 이유가 전무했음을 알게 된다.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면 모든 것이 체념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무용한 고민이었다.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내 하루를, 내 인생을, 내 삶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낸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하루를 설계하는 일기를 쓰며 새벽 5시가 되어 달리러 나간다. 한 시간 정도를 감사한 마음으로 달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하고 가벼운 식사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업무적 조언을 해주고 또 아이들과 대화하며 아내와 함께 가족의 미래를 설계한다.




시간대별로 해야 할 것들을 한동안 매우 촘촘하게 기록한 적도 있었다. 열심히 살 수 있었다. 또한 많은 것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숨 막히게 생긴 다이어리 대신 무지 클래식 노트로 바꿨다. 일정 대신 감정을 기록했고 마음을 살피는 글을 썼다. 손을 움직이고 눈으로 확인하고 머리로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 것들을 쓰는 것에 집중했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놀랍게도 이 와중에, 인연의 힘으로 또 그보다 더 감사한 운의 움직임으로 난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된다. 새로운 끈이 누군가와 이어지고 연결된다. 잊고 지낸 이들과 다시 감사한 일들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단 한 번도 계획한 적 없던 일이다. 어느 순간에도 예상하거나 꿈꾸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그러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유약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계획보다 원대한 나의 이상과 꿈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것만으로 내 마음속 어둠의 5할은 걷히게 된다. 내게 귀를 기울이고 나를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계획보다 존재하는 나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신경을 쓸 때, 지금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나의 인생이 얼마나 축복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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