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너머에
많은 것들이 숫자에 의해 규정되는 순간을 살았다.
나이, 키, 몸무게, 학점, 등급, 성적, 실적, 성장률.
나열하기 위해 생각만 하더라도 숨이 막혀온다. 물론 나의 성정 저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는 이런 숫자에 목매달고 그것이 전부이자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길 것이다. 숫자에 예민하거나 무감각하거나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그런 성향일 뿐이지. 다만 숫자의 의미를 곡해하지 않고, 그러니까 해석을 확대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숫자 너머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숫자가 담아내지 못한 것들은 또 무엇인지, 그 가운데 내가 잃고 살아온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진중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약한 소리가 아니던가.
언젠가 한 번은 숫자 너머에 있는 것들에 주목하고 했던 나의 생각을, 숫자가 두려워 그 뒤에 숨으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설령 그렇다한들 어떠한가. 결국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숫자 너머든, 아래든 이면이든 내재된 역량과 본성, 환경과 행운 등에 의해 알 수 없는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은 결과물들의 총합 아니던가. 그렇기에 숫자 그 자체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게 된다. 결과물을 만들어낸 본질적인 원인, 핵심적인 이유에 대한 고찰 없이 그저 '열심히', '치열하게' 해내야 함만을 강조한다. 공교롭게도 이는 상급관리자 혹은 덜 성숙한 경영인들이 단기적인 성과 내지는 실적, 목표달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오늘을 연명하려는 짧은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물론 열심히, 치열하게, 성실하게 앞을 보며 달려 나가는 것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래야 한다고 이끄는 리더가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것 '만'을 강조하는 것이 그들의 실수라는 것이다.
두루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 이거나 관찰자 이거나 이끄는 누구이거나 주체가 누군지 무관하게 우리는 상황과 사람과 숫자를 두루 볼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한 가지 숫자 혹은 이미지에 갇혀있게 되면 짧은 시간 내에 편견이 형성되고 그 잣대로 대상을 저울질한다. 상승이 있으면 하락이 있다. 오랜 시간 챔피언 자리를 지켜내던 누군가도 슬럼프를 겪는다. 이때 그가 힘든 시기에 내던 결과(숫자)만을 보고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대게 그것은 역사적으로 슬픈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숫자 너머의 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 혹은 그런 산업군이나 필드에서는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늘 그런 조직에는 '전략'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전략이라고 하는 것이 단기적 전술을 분석하고 처방하기 위한 미봉책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 오늘의 성과와 목표를 챙기고 있다면, 어느 누군가는 장기적 방향에 대해 오늘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얘기를 용기 있게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르게 올라와야 하고 빠르게 성장해야 하며 더 빠르게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이 버거워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버거움의 파도 안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의 삶을 제대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나는 숫자를 넘어서는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질문을 해야 한다. 노력보다 행운에 맡겨진 채 가공된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정성스럽게 나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 자신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이다. 타인과 조직과 사회 전체의 모습을 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때에 좀 더 성숙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도가, 연습이 쌓여가면 다양한 매체와 소셜 미디어의 자극적인 스토리와 커져가는 목소리에 잠식되지 않고 나만의 판단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도, 숫자에 매몰되어 오늘만 사는 것처럼 내달려온 과거가 있었기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수능이 끝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대학에 입학에서는 중학생 대상의 영어과외를 했으며 복학 후에도 계속 아르바이트를 이어갔다.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었던 일들 속에서도 내가 해내야 하는 목표들이 있었다. 다음 중간고사에서 학생의 영어점수를 10점 올린다거나 하는 그런 목표들 말이다. 학생의 성적이라는 것이 가르치는 이의 역량 외에도 여러 요인의 힘이 필요한 것인데 결국 학생의 점수에 의해 선생님의 역량이 평가된다. 학생의 열심과 스승의 정성과 평가 당일의 학생 컨디션 등등 요인의 합집합은 많은 경우 편향된 요인만이 부각되는 것이다.
은행원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영업인으로서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가 가장 큰 성과를 내고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때에도 나의 최선과 노력보다, 환경의 유익함이 큰 도움이 된 적이 많았다. 최근 한 기업의 CEO를 만나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과연 리더의 역량이라고 하는 것이 그 사람 고유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 누구든 인정하는 낭중지추의 뾰족함이라고 인정받는 무언가가 내 가장 대표적인 강점이라면 나머지는 다른 요소들의 도움으로 눈앞의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목표하고 기대했던 '숫자'를 달성하게 되면 가장 책임 있는 누군가가 그 영광을 누린다. 물론 성과에 대한 평가는 구성원들이 나눠가질 몫이겠으나 특출 난 노력을 한 이가 아닌 대표 한 사람이 공을 치하받는 경우가 빈번했다. 팀에서 발로 뛴 막내의 실질적 기여보다 승진이 절실한 팀장이 '숫자'에 대해 실질적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팀장의 이력서엔 괄목할만한 성과 한 줄로 기록된다.
숫자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환희와 기쁨과 슬픔과 부당함과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피워진 운의 꽃잎이 자라나 있다. 그래서 더 오래, 진중하게, 그리고 가장 솔직하게 숫자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보인다면 잊히거나 쉽게 묻힐 수 있는 귀중한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숫자 너머에 있는 것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