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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발견

by Johnstory

간혹 집에 혼자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오싹한 기분에 뒤를 돌아본 적이 있다.



나를 탐색하고 정비하고 새로운 일들에 도전하는 와중에 늘어난 것 중 하나가 실체 없는 두려움이다. 내 커리어에 대한 두려움,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에 대한 두려움, 관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점점 그 기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눈 때문에 커지는 건강에 대한 두려움, 학습에 대한 두려움,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한 두려움 등이 큼지막한 것들이고 이 외에도 자잘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순간순간 스쳐 지나가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수이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흩어져야 하는 것은 매일 내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나의 기상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하는 큼지막한 것들이다.


그럴 때마다 요즘은, 반대의 두려움을 주입하려 노력한다.

그게 뭐냐면, 대게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상황의 상상에 기인하고 있다. 그 상황을 반대로 돌려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공을 이뤘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목표하고 있는 수치들을 뛰어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종국엔 이런 애씀도 필요 없을 정도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어떤 상태가 되어야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바쁘지 않은 거다. 지금 분주하게 무언가를 계속해야 하고 그 이후의 일정이 또 기다리고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밤에 들어와 해야 할 공부가 있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까지 나의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간다면 지금 나의 두려움은, 내 한가함의 증거였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의 오늘과 내일을 설계하는 명상의 시간에서 디자인하는 상상의 시간과는 떼어놓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멍청한 시간을 보낼 때 그런 두려움이 찾아든다. 누군가와 비교를 하면서 이 불행이 시작된다. 상대적 결핍에 뒤따르는 건, '이 나이 먹도록'으로 시작되는 열등감이니 말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실체 없는 두려움이라지만 그 발현 근거의 실체는 명확했다. 어디에서 비롯되는지가 매우 선명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발견한 지금 내가 해야 할 조치는 하나다. 두려움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것. 그 어떤 여지를 주지 않는 것.



마흔이 넘고 나의 인간관계는 극도로 축소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진득한 관계에서 해가 갈수록 더욱 줄어든다. 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나의 행복은 갑절로 늘었다. '인지' 차원의 관계에서 '알게 된' 관계로 발전해 나갈 때의 기쁨과 감사함이 있다. 이제 내겐 그런 이들만 남았다. 가끔 지난 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디에선가 그들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며 건강한 삶을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구도는 더더 축소되어 한점 정도로 찍히게 될 것이다. 이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이유에선가 멀어지는 인연은 그 이유가 있고, 깊어지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이유를 곡해하거나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으려면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불요한 것들을 지워나간다.


미니멀리즘을 실행하며 공간을 정리하고 책을 정리하고 기록을 정리한 것도 그 이유이다. 시간의 흐름에 그저 쌓아만 둔 상념과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되살아난 공간만큼 마음이 트였다. 어느 날엔 이곳에 뭐로 채워져 있었지 하며 한참을 서서 생각할 때도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 또한 하나둘 내어야 할 것들이다. 채워가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라 배워왔는데,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잘 비워내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가진 것이 늘어날수록 커지는 근심과 걱정들을 경험해 봤다면 내가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따라 채워간 곳간엔 인심도, 만족도, 감사함도 남아있기 어렵다. 내가 스스로 가치와 쓸모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비워내야 할 것이다. 상대적 결핍을 들키지 않고자 애쓴 흔적들을 지워가며, 그간 나를 괴롭히던 두려움을 조금씩 걷어내 볼 요량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서로 다른 이유들과 이어져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위해 애쓰는 것은 나의 커리어적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보다 중요하다. 지난 이십여 년간 일을 하며 내린 결론이 이것이라니, 한동안 허무에 빠져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난 내가 만난 팀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은 이는 직장에서 행복할 수 없고, 직장에서 행복하지 않은 이는 가정에서 행복할 수 없다.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이 유용한 것은 아니다. 생각에도 주기적인 분리수거가 필요하다. 찌꺼기들을 먹고 여기저기 자라나는 두려움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고 나와 나의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방법이 더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국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지칠 수 있고 포기할 수 있으며 다시 무기력함에 빠지고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두려움을 발견했다면, 그대로 그것을 인정하고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도 늘 깨어있으라는 이야기가 통한다. 의식이 깨어있는 이들은 이런 작업이 익숙하다.


물건이든, 생각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나의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있는 것들을 천천히 정리하는 시간은 그 어떤 방법보다 두려움이라는 망상을 조용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고 정신적 물리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 되려 덜어내며 얻게 되는 고요한 쾌감이 있다. 하다 보면 알게 된다.


두려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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