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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볶음밥의 발견

by Johnstory

아내 말대로 나는 김치볶음밥에 미쳐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한 달 내내 이것만 먹을 수 있다면 다른 음식에 대한 욕심은 모두 버릴 수 있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포함된 김치볶음밥이다. 잘게 잘린 스팸과 장모님께서 매년 담가주시는 김장김치. 조건의 전부다. 때에 따라서 계란 프라이를 하기도 하고 없이 먹기도 한다. 전날 과음으로 힘든 날에도, 난 아내에게 김치볶음밥을 부탁했다. 3인분 정도의 밥을 넣으면 대게 2~2.5인분은 내 입으로 들어간다. 뭐, 열심히 달리고 있으니 그걸로 됐다며 합리화하는 나를 아내도 이제는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마흔여섯의 철들지 않는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를 효율은 낮지만 혈압은 높인다. 비경제적이다.


그래도 빈틈없이 볶아진 김치볶음밥을 한 숟갈 두 숟갈 퍼먹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이건 어디서든 누구일지라도 맛없게 만들기가 어려운 메뉴 아니던가. 여기저기서 배달시켜서 먹은 김치볶음밥의 맛도 대동소이했더랬다. 물론 가장 선호하는 것은 장모님의 김장김치로 만들어진 볶음밥이다. 초등학생 입맛의 남편을 위해 스팸은 아낌없이 퍼붓는 아내가 고맙다. 어찌 되었건 프라이팬채로 나오는 김치볶음밥은 반찬 없이 즐긴다. 대화도 필요 없다. 익어가며 더욱 매운맛이 강해지는 김장김치 국물이 밥알에 잘 배어들어가 제법 '김치'볶음밥의 맛을 낸다. 아내와 함께 먹으면서도 대화할 겨를이 없다. 식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김치볶음밥이야 식는다 하더라도 김에 싸 먹으면 삼각김밥과 다를 바가 없다. 그건 그것대로 즐기면 될 일. 아내의 성의가 식기 전에 다 먹는다는 낭만적인 생각도 아니다. 이 음식을 먹을 땐, 최대한 집중해서 단시간 안에 맛과 행복과 그로 인해 퍼지는 나의 미소를 온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몰입의 순간에 다른 불순의 것이 침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그렇다. 이쯤 되면, 나는 김치볶음밥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쓰다 보니 김치볶음밥에 특유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단 생각에 우쭐해진다.

레시피 없이도 감각으로 요리하는 전주여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김치와 그녀의 딸이 만들어주는 볶음밥의 맛이란, 내 미각의 기억에서 잊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일 1 김치볶음밥을 먹던 때에도 군말 없이 김치를 썰고 스팸도 썰고 계란프라이도 하고 큼지막한 웍에다 밥을 볶던 아내를 생각한다. 김치볶음밥은 아내의 마음이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고 싶은, 그것으로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밖에서의 모진 시련들을 잘 참아주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진 않았을까. 따뜻한 밥 한 끼가 생각나는 계절이 오고 있다. 더불어 작년의 김치들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 김장철이 곧 다가올 성싶다. 곳곳에 묻어있는 그 마음과 사랑을 삽시간에 먹어치워 버리는 개인의 습성 탓에 이제야 뒤늦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의미 있는 발견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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