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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발견

by Johnstory

좋은 책을 만났다.


좋은 책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판매량이나 트렌드에 힘입은 인기에 편승하여 광고되는 책이 아닌 그때그때 나의 상황과 마음과 기분에 의해 정해진다. 그래서 좋은 책을 읽는 것에도 휴지기가 존재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욱여넣을 수 없을 때 양서를 손에서 내려놓고 물건을 정리하기도 한다.


비워내는 것은 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언뜻 지난 일들이 떠오르는 물건이 있기도 하고, 꽤 소중히 다뤘던 것인데 그 역사가 잊힌 것도 있다. 한때는 없어선 안될 것들이 이제와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사람과 사랑처럼. 하물며 일개 물상의 것이 다르겠는가. 비워지는 공간에는 또 불요한 것들을 담아내던 물건들이 남는다. 이를테면 책과 책꽂이처럼 말이다. 하나둘 내어놓기 시작하니 듬성듬성 공간이 비기 시작한다. 물건을 '버린다'는 행위가 공간을 '살리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살아난 공간은 내게 그만큼의 숨 쉴 틈을 마련해 줬다. 내게 기쁨이었다.



아내가 끓은 꽃게탕에 며칠 전 사둔 막걸리를 곁들였다.


보고픈 이가 생각나 그에게 한 연락에, 아무 생각 없이 달려와 주었다. 아내와 150일이 채 안된 아기를 데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나뿐인 동서였다. 고된 일을 하고 있는터라 걱정도 많이 되었는데, 최근 지역과 근무부서를 옮기고 얼굴이 한결 좋아졌다. 일부 기억에 남은 일들, 뱉어놓고 기억도 하지 못하던 말들을 다음 날 아내를 통해 전해 듣고 내 나이가 서러웠다. 싱글몰트 위스키 한 병을 말끔히 비우고 맥주캔도 수두룩하니 쌓았다. 오늘보다 더 젊었던 어제의 시간이 그럼에도 내겐 기쁨이었다.



살면서 갖고 싶어 했던 차가 한대 있었다.


은행을 퇴사하고 호기롭게 전문 영업인의 길로 접어들며 8년 전 나의 미래일기에 적어두었던 그 차를, 집을 마련하고 때를 기다리고 더 모은 다음에,라는 핑계 덕에 얼마 전 손에 넣었다. 너무 당연히 갖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예상외로 나의 감정은 잔잔했다. 차 한 대에 설레고 흥분할 나이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늦은 나이에 마련한 차 한 대로 아내와 두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동력이 생겼다. 어디든 편하게 이동할 수단이 내게도 생겼다는 것은 가족들과 지금보다 더 다양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뜻했다. 안전한 여행일 일상이 되기를. Von Voyage!



기쁨을 생각하면 감사가 뒤따른다. 살아있음에 이 기쁨 또한 누릴 수 있는 것이므로.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어 잊고 산 기쁨이 얼마나 많았을까. 또 기쁨을 느낌으로 인해 달라지고 풍요로웠을 나의 하루는 얼마나 메말라 있었을까. 기쁨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가로막지 않는다면, 나의 매일은 그리고 우리의 하루는 잔잔한 기쁨들의 파도이다.

아내가 만들어주는 브런치도, 아이들이 그려주는 아빠의 얼굴도, 아랫집에서 구워준 초코칩 쿠기의 달달한 맛도,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느끼는 안락함도, 늦은 밤 조용히 방 안에 앉아 들어보는 Micah Edwards의 Moments 도 모두 내가 받은 선물이다. 거실에 앉아 관악산 중턱에 걸린 석양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기쁨의 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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