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결핍의 발견

by Johnstory

처음에 조금 늦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이건 아무도 모른다. 늘 지금과 반대되는 상상은, 현재보다 나았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고 최악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나에게 있어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은 오늘 이 시간부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내가 동경하고 원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처럼, 그 시간의 모습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한때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던 때가 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요소의 결핍이 커지면, 그것이 채워지는 것을 강력하게 염원하게 된다. 나머지는 중요치 않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일시적인 경우가 많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 가지의 간절한 염원은 현실에서의 환경에 많이 희석된다. 이것도 저것도 바라는 것들이 늘어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핍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결핍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신중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번 결핍이라 생각된 것이 채워졌다 하더라도 언제 또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매일 그 결핍의 흔적에 대해서 상기하고 처음 결핍이라 느낀 마음과 상태를 되새김질해야 한다. 적어도 그때의 상황들을 반복하기 싫은 것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건강 그 자체의 문제이건, 다이어트가 되었건, 물건 혹은 돈이건, 사람이건 상관없이 나의 결핍이 채워졌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로 어떤 느낌이나 특정 상황의 영향으로 결핍이 충족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부족한 것이 내게 중요한 것이라면, 잠시의 충족으로 결핍이 해소되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결핍의 상태로 돌아간다. 채워지지 않은 것이 예상치 않았던 어떤 요인에 의해 갑자기 채워진 것이라면 더더욱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생명에 본질적으로 위협이 되거나 부정적 영향을 끼칠만한 것이 아니라면 결핍에 대해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것도 삶의 지혜로움일 수 있다.

사랑과 우정의 결핍이 있더라고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나를 더 아끼고,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가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혼자만의 시간은 가정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결핍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결핍은 이토록 상대적인 것이다.

비만인 사람의 결핍은 가벼운 체중, 날씬한 몸이겠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떤 이에게 결핍은 비록 한쪽 눈으로라도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가 될 테니 말이다.



결핍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결핍이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좋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 삶에 주어진 기본적 상태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1'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내게 주어진 '온전함'이라고 받아들이면 결핍이 아닌 감사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이상적이고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결핍에 집중하는 마음은 갈급함을 낳는다. 빠르게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고 합리적 판단에서 멀어지게 만들며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해버리기도 한다. 무리하게 결핍을 채우려다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을 때 가른 패턴으로 이상 행동이 발현되기도 한다. 폭음, 폭식 등과 같은 형태로 말이다.


결핍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내가 그 대상을 결핍으로 느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삶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타인과의 비교 정도가 심한 누군가는 결핍의 대상이 많고 그 크기도 클 것이다. 상대가 가진 좋은 것들에 비해 자신의 모습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분노와 괴로움, 질투심이 뒤엉켜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한다. 각자의 주어진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지금의 모습이 쌓여가며 계속해서 변화한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지면 다른 결핍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의 생존을 염려해야 하는 단계가 아니라면 나는 나대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이대로면 충분하다고 다독이는 대상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지금의 모습, 결핍이라 느끼는 대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왜 그것을 결핍이라 느끼고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남들에 비해'라는 말이 나온다면 '거짓 결핍'이라 생각하자. 아마도 내가 결핍이라 부던 그것은 외부의 어떤 자극들에 의해 생겨난 일시적이고도 무용한 일시적 감정 따위였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삶이란 나를 가꿔가는 하루하루를 온전히 채워가는 과정이다. 마음의 정원과도 같다. 매일 햇빛을 쪼이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흙을 고르고, 때로는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도 온 마음 다해 가꿔가는 마음의 정원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혹 그 가운데 시들어가는 식물들이 눈에 뜨였다고 해도 정원 전체가 망가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진정한 결핍인지도 모르는 그 대상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을 이유로 부여받은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정원을 소중히 가꿔보자. 부족함의 공간은 여유와 여백의 가치가 채워질 수 있도록 허락하자. 눈에 보이는 것이 차지해야 할 자리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함께하게 되면 인생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살아있음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