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멀리 내다보지 않는 것의 현명함

by Davca

언젠가부터 나는 먼 미래의 일에 대해 설계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인데 내일 그리고 먼 내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흔일곱이 된 지금이 되어보니 그간의 내 삶은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뿐더러 아주 다른 길을 택하고 그 길 위에서 헤매다 예상치 못한 인연의 힘으로 또 다른 세상을 거닐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리도 내 손에 쥐고 통제할 수 없었던 시간들에 대해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멈칫거리던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 지난날들이야 이미 내 손에서 빠져나간 모래알 같은 것들이기에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보내주면 그뿐이다. 지금 내게 의미 있는 시간은 새벽에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대략 16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들만을 계획해 보는 것에 대한 재미 그리고 긴박감을 즐기는 것이 내 인생에 유용한 것임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보통은 새벽 5시에서 5시 반 사이에 알람 없이 기상한다. 가끔 아주 깊게 잠을 자면 3~4시 사이에 눈을 뜨기도 하지만 최소 6시간의 절대수면 시간은 지켜보고자 억지로 눈을 감고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어나 화장실을 간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거실 책상에 앉아 따뜻하게 데운 생수를 한잔하거나 상온의 생수를 마신다. 작년부터 찬 물을 마시거나 찬 음료를 마시는 것을 서서히 줄여가면서 몸이 편안해짐을 느끼다 보니 이제 아이스아메리카노 대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나이가 듦에 몸 또한 변해가는 것을 서글퍼하지 않으며 잘 받아들이는 중이다. 때와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처를 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침울해져 있는 것보다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겠는가.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니 부수적인 것들까지는 신경 쓰려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펴고 펜을 든다. 감사일기로 시작하여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쉬지 않고 적어 내려 간다.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한 구상도 보통 이 시간에 하게 되며,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작성도 이 시간에 이루어진다. 나의 하루는 매우 단조로운 편이라 특별할 것도 없다. 새벽기상, 모닝페이지 작성, 글쓰기, 독서, 독서노트 작성, 걷거나 달리기, 수분보충, 간헐적 단식, 밤 9시 30분 취침. 거의 매일 이 일과를 유지한다. 새벽 5시 30분 기상을 기준으로 16시간 동안 깨어있고 활동하는 셈이다. 회사를 다닐 때도 다를 바 없었으나, 가끔 있는 회식에 참석하게 되면 취침시간이 좀 늦어졌었다. 술도 좋고 술자리도 좋아하는터라 종종 이런 모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수면의 질이 나빠지고 숙취가 조금씩 오래 감을 느낀 후부터 나를 더 챙기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마시는 술보다 혼자서 작은 맥주 캔 하나 마시는 기쁨을 알게 된 후론 술자리도 줄고 나의 음주량도 급격히 줄었다. 대신 걷고 달리는 시간이 늘었으니 자신을 위해 건강한 선택을 한 것 아니겠는가.



16시간 동안 내가 할 일을 적어본다. 그러면서 해야 할 일들 각각 대략적인 소요 시간을 계산해 본다. 한때 분 단위로 일정을 맞춰두고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어가며 일을 한 적도 있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내게 이런 패턴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만들고야 말았다. 시간에 쫓기거나 정해진 타임라인에 맞추기에 급급하며 작업의 퀄리티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계획은 조금 느슨한 편이고 늘 변경의 여지는 둔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나의 16시간은 12~14시간 정도에 끝낼 수 있는 수준으로 채워진다. 여분의 시간은 활용도가 거의 유사하다. 독서와 글쓰기. 16시간 설계의 유용함은 이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이다. 길게 봐야 오늘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인 것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일이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단지 미래를 설계만 한다고 그 미래가 알아서 내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주어진 시간을 나답게, 즐겁게, 유익하게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내게 부담 또한 덜어준다. 길게 내다보는 것은 명상할 때 내가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에 대한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 충분하고, 실질적 계획은 오늘 16시간으로 족한 것이다. 자신에 기준에 부합한, 흡족한 하루를 보내본 이들은 안다. 이것이 주는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을 말이다. 이 만족감은 다시 또 내일, 또 내일을 이렇게 살아가도록 이끈다. 사이클이 반복될수록 감사함도 커진다. 16시간만 충실히 산다는 생각은, 앞으로 남은 인생 전체를 떠올리고 부담을 느끼는 것보다 유용한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지금 내가 먹는 것, 지금 내가 하는 생각으로 오늘이 완성되고 내일로 이끈다. 그리고 이 시간의 누적은 나의 삶이 되고 정체성이 된다. 그것을 꽤 먼 미래에서 내다볼 때 잘 살아온 인생이 되는 것이다. 16시간의 계획은 16개월을 계획하는 것보다 쉽고 16년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보다 가볍다. 오늘 깨어있는 동안만 나의 뜻대로 충실히 산다는 다짐에는 힘이 실린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한번 더 나아갈 용기가 생긴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끝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범주에 있고 한 시간, 두 시간 채워가는 과정 또한 해볼 만한 일이다. 빽빽하게 채워진 일정이 주는 형식적 만족이 아닌,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모두 해냈다는 실질적 만족을 경험하게 되면 내일도 이렇게 살고 싶어진다. 그 내일은 어느 순간 내가 그리던 미래에 다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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