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속도로 달리는 이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 이름표에 맞는 달리기를 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누가 보든 말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달리기를 하는 것엔 아이러니하게도 용기가 필요하다. SNS와 방송에는 죄다 잘 달리는 이들뿐이고 왠지 내가 하는 것은 달리기가 아닌 이색종목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한다. 가끔은 코로 호흡하며 아주 느린 속도로, 또 어떤 날은 코와 입을 둘 다 사용하며 달린다. 정답이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개인마다 달리는 목적이 다를 수 있는데 정답이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달리기엔 우리 모두의 이름이 제각각인 것처럼 각자의 이름표가 있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달리기는 유별난 것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 일뿐이다.
그러니 어떤 기준에 맞출 이유가 없다. 나답게 나아가면 되는데 자꾸 다른 이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버거워진다. 어울리지도 않는 것들에 돈을 쓰고 나를 치장하는 것을 '자신을 가꾸는 것'으로 착각한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에서 벗어난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선택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나만의 이름표를 달고 달려본 이는 안다. 빠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해도 그런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선택과 집중이 빠르고 쉽다. 정말 나의 것이라 생각되는 것엔 몰입도 수월하다. 나의 것이 아닌 것들을 이고 지고 살았을 때는 알지 못한 세상을 보게 된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 아름다움이란 바깥세상이 아닌 내 안의 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나대로 산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며 산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동경하며 지켜내는 삶을 산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이름표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지나오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은 나를 보며 웃을 테고, 울기도 할 것을 안다. 나를 아끼는 이들은 마음이 아플 것이고 나의 절망이 기쁜 이들에겐 흥미로운 가십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의 시선을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의 이름표를 달고 달려 나가는 것에 부끄럽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거면 족하다. 만약 누군가가 충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부끄럽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그는 실로 대단한 것을 이뤄낼 준비가 끝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아가지 못한다. 사회에 메이고 직장에 메이고 가정에 메이고 책임과 의무에 메이면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는 없다. 눈앞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 처리해야 하는 존재로만 생명력 없는 시간을 이어갈 뿐이다. 이름이 서서히 지워져 가는 이름표를 한 번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눈을 비비고 조금만 정신을 깨워본다면, 내가 지금 누굴 위해서 어떤 존재로 달려가고 있는지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이다. 누가 지어줬든 우리에게 이름을 선물하고선 세상 행복한 날들을 보냈을 부모와 가족들이 있다. 이름이 있는 것은 그런 이유일테다. 그 이름답게, 바로 딱 너답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이유일테다. 그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이름값을 하라는 말이 비단 성취를 이뤄야만 함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실로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이름을 부여받은 이 지구상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삶이, 그렇게 달리지 못하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저마다의 이름표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달라야 한다. 같아질 이유가 없다. 나는 내 이름표에 맞게 달려 나가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나의 속도로, 나의 폼으로 달려가보자. 정답이 있을 리 없는 세상이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도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지 않던가. 나의 방식으로, 나의 결정으로, 나의 책임으로 살아가는 삶에 그 어떤 이유가 필요할까. 살아가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일 텐데 말이다.
엄친아, 엄친딸은 이미 옛말이다.
콧방귀도 안 뀔 이런 표현에 왜 그리도 심각했었나. 그들은 그들의 이름표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 엄친아라고 인생에 흑백이 없겠는가. 엄친딸이라고 세상 완벽한 행복만 머금고 살아가겠는가. 모두 다 한 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SNS의 피드에서 이제 그만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고 잘 맞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외부로 향하는 일방향적인 관조는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보다 나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로 스스로를 관찰하며 아껴주는 시간을 보낸다면 조금씩 나를 알아갈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가벼움을 느끼고 지난 무언가의 무용함 또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이 무가치한 대상에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며 살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되도록이면 빠르게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나대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응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누구에게서 대여해 온 삶이 아니지 않던가. 내 가슴에 붙어있는 나만의 이름표에 맞는, 그런 달리기를 하는 시간들로 올 한 해를 채워간다면 2026년 12월엔 어떤 모습으로 이 글을 다시 읽게 될지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도, 나의 글을 읽는 많은 분들도 자신만의 달리기를 하는 하루가 쉬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언젠가는 떼어질 그 이름표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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