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흔한 실수

by Davca

불필요한 말이 길어지면 실수를 하게 된다.



더군다나 그것이 동종의 관심 영역에 있는 불특정 소수를 겨냥한 글이라면, 표현과 메시지에 의젓함이 배어있어야 한다는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다. 잘 쓴 글이 절대적으로 옳은 글은 아닐 것인데 빈번하게 교훈 따위를 찾게 된다. 요 며칠 쓰지 못한 핑계를 이렇게라도 갖다 대본다. 나는 무엇을 쓰고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 채 분량만 채우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것이 온전히 나의 글이 되려다 말고 또 되려다 마는 시간을 반복했다. 벤치마킹의 명목으로 최소 4천 자는 써야 한다는 강박은 분량을 채우기 위해 말을 늘리고 늘렸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싶으면서도 매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진전하지 않는 글쓰기 실력에 대해 반성하게 했다.



한편으로 나는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좋아 보일 수 있는, 그럴 확률이 높은 특정 면만을 부각하며 옹졸한 만족감을 느꼈다. 퇴사의 포장은 나를 찾고, 스스로가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하고 썼지만 나는 그저 쉬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일단은 내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매우 냉정한 나의 모습은 일하지 않는 비생산적 존재에 불과했다. 그것 말고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취했다. 이 정도쯤은 할 수 있잖아,라는 근거 없는 합리화로 나의 사고회로는 마취되었다. 정말이지 근거가 없는 우쭐함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말은 이런 때에만 의지하고 신뢰하고 싶은 이론이 되었다. 노력은 차치하더라도, 나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닌 사실과 경험의 기록에 바탕을 둔 생각을 글쓰기의 재료로 활용할 것이라면 최소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용기쯤은 갖추고 있어야 했다. 옳은 글 대신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의 글이 돋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 자격도 없으면서 모범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설령 내게 그런 능력, 행동과 생각과 말과 글이 모두 일치되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가 알아주고 인정하는 것이지 내가 그런 존재라고 떠들고 다닐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부르짖는 것은 자유일지 모르겠으나 알아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는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지금껏 내가 지나온 과정 전체에 대한 인정, 수용이 필요하다. 난 그것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억에 남기고 싶은 좋은 것들만 수용했다. 나머지는 경험이 아닌 찌꺼기로 버려졌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명과 암을 취사선택하며 살아갈 수 없다. 자가치유능력을 보유한 존재도 원치 않는 일을 겪었고,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그리고 그 감정에 솔직하게 다가섰기에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벌어진 사건들은 그저 일어난 현상이다. 최소한 나 스스로는 그 일들에 대해 숨기지 않고 써 내려갈 수 있어야만 한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 과정에서의 깨달음을 정리하면 그만이다. 사실에 대한 수용이 먼저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이 글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로 누군가의, 또 어떤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기를 원한다면 철저하게 솔직해져야 한다. 메시지가 미화되어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이들의 자유사고를 기만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받아들이는 이의 몫은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내가 발견한 통찰은 있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애써 건네려 해선 안된다. 상대로 하여금 불편함을 유발하는 글쓰기는 멈춰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사건과 그에 대한 감정의 변화와 발견해 낸 이치에 대해 그저 '기록'하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나의 목적에 부합하는 글쓰기였다고 이제야 알아차린 셈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들의 흔적을 지울 필요는 없다. 그것이 실수의 똥밭이라도 거름이 된다면 그 또한 나를 내가 되게 하는 고마운 역사가 될 테니 말이다.



이제 그만, 솔직해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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