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동시를 즐겨 읽는 저에게도 동시는 어렵습니다. 한 번에 해석되지 않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동시가 많습니다. 점점 많아 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를 읽는 재미도 분명 있습니다. 해석되지 않을 것만 같은 시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해석해냈을 때, 그 순간이 주는 쾌감이 있습니다. 또한, 쉽게 해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머무는 동시와 함께 살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어려운 동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동시가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쉽게 잘 읽히기 때문에 좋은 동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이 그런 동시집입니다.
저는 동시집을 읽을 때 시인의 말을 아껴 읽는 편입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읽습니다. 시인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말에는 시인이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는지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시는 고백의 언어입니다. 그만큼 말하는 자의 육성에 가까운 언어가 바로 시 입니다. 그러니 말하는 자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다면, 시를 깊고 넓게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는 말하고자 하는 바에 닿고자 하는 영원한 실패의 과정이지만, 시가 출발한 곳을 안다면 그 길을 함께 걸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시인의 말> 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밀려올 때, 동시를 쓰면서 웃을 수 있었어요. 세탁기, 선풍기에게 말을 걸고 눈사람의 말을 적다 보면 쓸쓸했던 마음이 어느새 환해졌어요."
시인은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 없고, 주저 앉고 싶을 때 동시를 썼다고 합니다. 절망과 좌절의 날들에서, 시를 쓰면서 웃었다고 합니다. 쓸쓸했던 마음이 환해졌다고 합니다. 김봄희의 시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시는 타인을 위한 말이 되기 전에, 자신을 향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한 행, 한 행, 그러니까 한 걸음, 한 걸음은 스스로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걸음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은 씀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였다고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말을, 나를 위해, 나에게 직접 해주었던 것입니다. 시를 쓰는 일이 시인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회복 되는 모습을 보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곳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나를 위한 말이 너를 위한 말로, 독자를 위한 말로 확장되어야 시의 생명이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시인이 말을 건네는 대상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시의 소재가 주로 가시적인 대상들이기에, 시는 대부분 구체적인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전개나 발상이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작품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시의 감각이 저에게 와 닿지 않은 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나 감상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체험에 머문 시들이 보여 아쉬웠지만,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시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좋았던, 여행 가방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십여 년 전, 나는 저 멀리 발트해에 다녀왔지
비행기를 열세 시간이나 탔는데 밖은 여전히 환했어
해가 지지 않는 백야라나
덕분에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끌려다닌 기억이 나네
그 땐 힘든 줄도 몰랐지
오 년 전쯤일걸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잘못 갈아타
나만 혼자 떨어진 적도 있었지
눈앞이 아찔하더군
어딘지도 모르는 어둠 속을 끝없이 달리다
식구들과 만났을 땐 눈물도 안 나더라니깐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다 바퀴가 빠진 적도 있었지
어디서 부딪쳤는지도 모른 채 멍들고 찌그러지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내 몸을 좀 봐
평생을 여행하며 받은 훈장이지
내일 난 할아버지와 함께 요양원으로 떠난다네
아무래도 내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친구도 이 작은방을 곧 벗어나겠지
부디 멋진 여행하길 비네
-<여행 가방 이야기> 전문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김봄희 시인은 이야기 꾼입니다. 이처럼 짧은 단편 소설 같은 완결된 서사를 보여주는 동시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 동시집이라는 형식이 있지만, 한 편의 시에서 이와 같은 서사성을 구축한 동시는 귀합니다. 그것만으로 시인의 위치는 특별합니다. 그러나 김봄희의 시가 빛나는 이유는 시에 뿌리내린 희망 때문입니다.
시인은 <말 걸기>의 방식으로 시인은 여행 가방의 이야기를 받아적었습니다. 평생을 여행하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방이 있습니다. 그는 바퀴가 빠지고 멍들고 찌그러졌는데도 평생의 여행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가방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으로 보이지만, 그는 오히려 "훈장"같은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요양원으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마지막을 향하는 순간에도 지난 삶을 "여행"이라고 말합니다. 작은방의 자기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부디 멋진 여행하길 비네"라는 마지막 말을 가만 보고 있으면, 삶에서 마주했던, 혹은 마주하게 될 절망의 시간들이 마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처럼 기억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절망을 만나도, 희망의 빛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에서 희망의 단서를 발견하는 일은 김봄희 시인이 가진 미덕입니다. 표제작,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을 옮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마을버스가 서둘러 정류장에 들어왔어. 사람들은 우산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지. 그때 교복을 입은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거야. 다른 차를 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에 다 오를 때까지 한참 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서 있더니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는 거야. 그것을 본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한 발짝씩 자리를 옮겨 오빠가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 마을버스는 걷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 천천히 움직였지.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거야.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