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나이를 애벌레와 비교해 본다면, 몇 살까지 애벌레의 삶을 사는 걸까.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몇 차례 허물을 벗으며 자란다. 고치가 되어 견디고 나면 날개를 달고 자유로이 날아가는 나비로 변한다.
정해진 교육 절차를 밟고 졸업하면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는 줄만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되면 꿈을 찾아 일을 하고 어디론가 자유롭게 날아가리라.
대학 졸업 후 일 년 남짓 직장 생활을 했다. 잠시 나비가 된 줄 알았는데 사회 초년생인 나는 여전히 애벌레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니 또다시 고치 생활에 돌입했다. 나비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이상하게 나의 삶에는 애벌레와 고치만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딸이 둘이 있다. 축복이자 선물인 아이들은 자체적으로 가진 생명력을 자꾸 나에게 전달하며 좀 더 잘, 현명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도록 한다.
어느 날엔가, 아이들과 숲길을 걷다가 날개가 부러진 나비를 본 적이 있다. 어쩌다 한 날개의 반을 찢긴 것인지, 날지 못하는 나비는 바위 사이를 폴짝 뛰어 이동했다. 날개를 잃은 나비라니, 왠지 그 신세가 나인 것만 같아 한참 나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를 한다는 것이 한 날개를 잃어버리는 일일까. 나는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내가 나비로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어떤 날개를 가진 나비 었는지 알았다.
딸은 엄마의 삶을 보고 따라 산다던가. 그 말은 묵직한 무게감을 주었다. 딸들이 나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서 부단히 애를 썼다. 이렇게 걸으면 된다, 너는 너의 길을 향해 날라는 메시지를 내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부단히 나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소소하게 배운 언어, 공예, 악기부터 내 삶의 길을 이끌었던 글쓰기까지. 심지어 아이가 두 돌일 때 배운 러시아어는 아이와 함께 챙겨 싸간 간식을 먹이며 들었다. 냅킨 아트며 미싱,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동안 손으로 하는 일을 확실히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삭의 몸으로 그림책을 만들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며 내 품에서 아이를 보내고 처음으로 혼자 어린이 책 읽기 모임에 가서는 엉엉 울다가 왔다. 부대끼는 결혼 생활을 견디는 동안 글을 썼고, 첫 아이 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 상담 대학원에 입학했다.
육아를 하며 나를 찾는 과정은 치열했다. 때때로 나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기도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언젠가 자신의 삶을 향해 걸어갈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된 후에 나의 삶을 살기 위한 투쟁에 가까운 도전은 학창 시절에 찾던 진로 찾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의 사골국이었다. 예쁘기만 한 나비이기만 하지 않았다. 때때로 날개를 잃은 나비인 순간에는 다리에 온 힘을 주어 힘차게 뛰기도 했어야 했다. 완벽하지 않은 순간도, 100점이 아닌 60점 밖에 되지 않은 삶의 순간과 나의 모습도 그대로 보며 살아간다.
아이들도 예쁜 나비의 삶만 살기를 꿈꾸지 않는다. 언젠가 거센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기왕 나비라면 다리도 굵고 튼튼하여 힘차게 뛰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고 날아갈 수 있는 나비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