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아내 상.
어렸을 때 보았던 '이브의 모든 것'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가끔 생각난다. 줄거리는 뒤로 하고 내게 인상 깊었던 건, 여자주인공(채림)을 잘 도와주고 챙기던 남자주인공(장동건)의 자상 함이었다. 따뜻한 말과 함께 설거지를 도왔던 것 같은 장면이었는데, 그걸 보던 나는 아버지에게 '나도 집안일을 해주는 남편과 결혼을 할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 말에 별반 동의를 하지 않으셨고, 약간의 반발심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저녁 모임을 마치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일상 수다와 일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와보니 부엌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저녁밥을 챙겨주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며 외출할 당시, 설거지가 쌓여있어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었다. 결혼 10년 차, 남편의 능력치가 높아지며 기대 이상으로 부엌이 깨끗한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세탁실을 열었다. 다 돌아간 빨래가 세탁기 안에 있어서 열어보니 남편의 옷가지였다. 찰나에 널어줄까 말까를 고민했다. 부엌도 깨끗하게 정리해주고 했으니 널어주기로 했다. 다른 이유로는 세탁기에 빨래가 있는 것을 싫어하는 내 스타일 때문이기도 했다. 두 가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 나를 위한 거다.
빨래가 돌아가 있으면 으레 널어줄 법도 한데 찰나에 고민을 왜 했을까. '자기 뒷정리를 하는 건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한다.'라는 신념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일은 스스로, 고등학교 때부터 독립해서 살았던 나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내 기준에서는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챙겨줘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익숙하게 보아왔던 현모양처의 틀에 맞춰 내조를 해주는 아내 코스프레에 맞추려고 나를 욱여넣었다. 그러나 일을 할 때마다 불평불만이 마음에서는 터져 나오고 있는데, 외면한 채 스스로 자책을 했다. 상대를 돕는 일을 했다 하더라도 에너지가 좋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 공간 또한 안전하지 않았을 거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자신이었다. 결혼 초기에 가부장적이고, 부부 사이의 서열의 틀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에게 맞춰주는 것 같으면서도 안팎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도, 남편과도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남편은 본인이 학습해 온 남편에 대한 이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국물도 없겠다고 본능적으로 자각했을지도 모른다. 점차 나는 남편이 버는 월급의 반은 가사와 육아를 하고 있는 나의 몫인 거라며, 남편과 나 자신을 지속적으로 세뇌(?)했다. 그럼에도 학습되고 정형화된 아내 상으로 인해 자책하는 마음이 오래 남아 있었다.
남편은 내가 어디 나갈 때 밥이나 반찬을 요구하거나, 가사에 대해서 책임을 묻거나 핀잔한 적도 거의 없다. 스스로 나서지 않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게으르게 반응하여 가끔 견딜 수 없게 하기도 하지만, 가사 일로 채근하거나 무조건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남편이 정말로 요구하는 아내의 모습과 내가 스스로 설정해 둔 아내의 기준 또한 어딘가 모르게 차이가 있었다.
'어떤 아내이어야 한다'는 기준과 실제 '나라는 아내'의 모습은 다르다. '어떤 아내이어야 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은 아니다. 남편과 내가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고 함께 만들어 낸 기준도 아니다. 집단과 공동체를 통해 학습하고, 부모를 통해 보고 자란 기준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다른 환경에서 오랜 시간 두 사람이 학습해 온 남편상과 아내상이 서로 다르고, 함께 이야기해보지 않은 배우자에 대한 각자의 이상에 갇혀 우리는 진짜 서로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행복이 찾아오는 것처럼, 남편 아내도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평화가 찾아온다.
오늘 아침에는 자고 있는 아이의 등원을 남편에게 홀로 맡겨두고, 자유부인으로 먼저 나갔다. 계획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갈 시간이 조금 더 급했던 내 일정을 남편이 배려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지 않고, 아빠 사무실에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로 당황스럽긴 했지만, 책망 대신 그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는 위로를 그와 나에게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