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내음이 무르익는 5월이다. 하얗게 보이던 딸기 꽃은 어느새 붉은 딸기로 익어 봄의 절정을 알리고 있다. 밭에서 익은 딸기를 한 알씩 따서 담은 상자가 차곡차곡 쌓이고, 동네에는 좌판이 줄지어 섰다. 흐르는 물에 살살 씻어 꼭지를 잘라 입에 넣은 딸기는 봄의 노곤함을 씻어준다.
학교에 간 아이가 얼굴이 딸기처럼 익어서 돌아왔다. 엄마 얼굴을 보자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이토록 당황스러운가 싶어 웃음이 났다. 사연인 즉, 학교에서 딸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딸기가 과일이라고 하자 친구가 채소라고 억울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친구가 눈물을 보여 머쓱한 것 같았다. 그래도 딸기가 절대로 채소는 아니지 않으냐며 엄마의 생각을 물었다. 딸기가 일으킨 사태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첫 아이를 낳아 몸조리를 하던 5월이었다. 시간 단위로 먹고 자고는 일을 반복하는 갓난아기와 집에만 있기엔 답답했다. 창문 밖으로 봄바람이 느껴지니 구두 신고 나들이라도 쐬고 싶은 심정 이건만 아기를 데리고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찾아왔다. 평일에는 일을 하느라 바쁘고, 주말이면 군대 간 남동생을 보러 뭍에 다녀오느라 바쁜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두 손에는 딸기가 가득 들려있었다. 어릴 때 딸기를 씻어 얼려두었다 우유와 함께 갈아주던 어머니의 간식이 생각났다. 아이와 둘 뿐이던 집에 온 어머니가 반가워 딸기 손질 좀 해주고 가라고 부탁했다. 갓 아이를 낳고 엄마는 되었지만 아직도 돌봄과 사랑이 그리웠던 터다.
“이런 건 이제 네가 직접 해 먹어라.”
동생을 군대에 보내고 온통 마음이 쓰라리셨을까. 평소 애정 표현이 많진 않아도 냉정한 어머니는 아니었건만, 예상치 못한 딸기 가시가 손 끝에 박힌 마냥 오래도록 쓰라렸다.
딸아이에게 친구가 많이 속상한 것 같으니 우리도 한 번 알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딸기는 밭에서 자라니 과일이 아닌 채소라고 했다. 아이들의 말씨름이라고 생각했건만 예상치 못한 답을 내 얼굴마저 딸기 빛으로 물들게 했다. 향긋한 향내 하며 달짝지근한 맛, 봄이 되면 식탁 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를 보면 과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딸기가 과일이 아니라니.
아이 돌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린아이를 안고 시댁을 찾았다. 젖 먹이 아이를 안고 비행기 안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도착하니 잘 익은 딸기를 한 접시 주셨다. 몸에 붙어 있는 아이와 허덕이던 터라 입 안이 바스락거렸다. 손을 내밀어 딸기를 집으려는 찰나, 시고모님이 말했다.
“잘 익은 딸기는 남편과 아이 주고, 무른 딸기는 네가 먹어라.”
순간 딸기를 향해 내밀던 손이 부끄러워졌다. 딸기마저 손이 닿는 대로 먹을 수 없는 처지라니. 그제야 결혼을 하고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 집 안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깨닫게 되었던 걸까.
딸기는 채소일까 과일일까. 과일이라 하기엔 자라온 모양새가 채소임에 이견이 없고, 그렇다고 채소라고 하기엔 불그레한 얼굴이며 향긋한 향내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걸까. 딸기는 과채류라는 새로운 종목에 속했다. 과일이기도 하고 채소이기도 한 건지, 과일도 아니고 채소도 아니라는 건지. 딸기는 과채류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이를 낳은 나는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집의 식구도, 그렇다고 저 집의 식구도 아닌 것 같은 알 듯 말 듯한 소외감을 딸기도 느꼈을까.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을 때, 입덧을 하는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사다주신 과일이 딸기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전 한 겨울딸기가 어디 있었을까 싶건만, 아버지는 시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딸기를 한 소쿠리를 구해 어머니에게 건넸다고 한다. 태 속에서 먹었던 그 딸기의 소중한 향내가 잔잔히 내 몸에 퍼져 있는 것 같다. 과일로도 살지 말고 채소로도 살 지 않겠다는 딸기. 붉은 얼굴과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딸기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