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픈 독립도 독립이었음을.
내가 혼자 살게 된 건 아주 급하게 결정된 일이다.
이상적으로 나오게 된 건 아니고, 다툼 끝에 통보를 받았다.
내가 이곳을 나가 잘못되어서, 당신들이 아주아주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나가 살 곳을 찾았다. 마침 세미나가 있어서 3일 정도 출장지에서 고시원을 알아보았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누구 한 명이라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제발 알아달라고 울부짖은 것 같다.
학교 근처에 여성전용 고시원이 있었고, 그곳에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짐을 많이 둘 수 없어 굉장히 부지런해야 했다.
냉장고는 아주 작아 여러 반찬을 둘 수 없고, 냄비는 항상 설거지해서 방의 책장 어딘가에 보관을 해야 했다.
모르겠다. 그땐 음식이 아니라 먹이를 먹었다.
맛있다고, 혹은 맛이 없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그냥 먹었다. 욱여넣었다.
텅 비어있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그 무렵 국외, 국내 출장이 많이 잡혀있었다.
고시원 안에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발표 준비를 위해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상담을 진행했을 때, 내 상태는 악화되어있었다.
'잠이 오질 않아요.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내내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무서워요, 제가 저를 해칠까 봐.'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약을 처방받아야 할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전에 상담을 더 밀도 있게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말 그대로 나와의 사투를 벌였다.
차도가 있던 거였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험실에서 일을 하다가, 친구가 보내준 영상을 보았다.
친구들과 간 여행지에서 모두가 자는 새벽에,
노트북 불빛에 의존해 워크숍 발표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선생님, 저 휴학할래요.'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하셨다.
하지만 내 결정이 번복될 거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간은 어느 정도로 잡을지,
지도교수님껜 어떻게 말씀드릴지 함께 의논해주었다. 앞으로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지도.
그렇게 전 직장과 계약을 하며 실험실을 나왔다.
그 무렵, 이전에 넣어두었던 행복주택에 당첨되어서 고시원도 나왔다.
정말 신기하게도, 한꺼번에 정리가 되었다.
고시원도, 실험실도.
하지만 나에게 고시원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다.
왜 그럴까?
지금의 내가 고시원 생활을 하던 때의 나를 떠올려 보면,
언젠가 다른 날이 올 거라고 은연중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서 버텨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공간에서의 독립, 경제적으로의 독립, 그리고 감정적으로의 독립.
나는 모든 독립을 이루었다.
이러려고, 그렇게 아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