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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r 25. 2022

나와 모두의 눈동자에 건배

친구가 시력 교정 수술을 했다. 스마일라식이라고 한다. 그게 뭐냐고 하니 안 아픈 거라고 했다. 마음에 쏙 드는 말이었다. 하루 이틀 관리만 하면 바로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좋다고 한다. 나보다 시력이 좋은 편이었던 그 친구는 새 세상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시력이 아닌 세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강남 안과에 와있었다. 예전에는 눈에 손대는 것이 싫어 수술을 기피했었다. 대신 하드랜즈를 오래 껴왔는데, 이제는 그 딱딱한 것을 눈에 넣고 다니는 짓은 도저히 못 하겠다. 넣고서 1시간만 지나면 눈에 빨간 줄이 가고, 점심 후에는 모래를 넣은 것처럼 뻑뻑하고 아프다. 외모의 이데아를 하나씩 품고 사는 대학생 시절에는 안경 쓴 꺼벙이가 너무 싫어서 집에 갈 때까지 어떻게든 끼었지만 마흔이 넘은 이제는 정말 때려잡아도 못 하겠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안경파로 돌아섰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때문에 안경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마스크 덕분에 안경을 쓰는 게 아니라 얹고 다니는 것 같았고 불쑥 피어나는 김서림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 말도 안 되게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초등학교 때부터 달고 산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친구의 '새 세상' 소감이 나를 움직인 것이다. 




이것저것 검사 후 조그만 상담실로 갔다. 상담 실장님이 마주 앉더니 눈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하셨다. 근시나 난시도 충분히 교정 가능한 범위고 각막도 두꺼워 재수술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이제 광명 찾는 건가'

기대감에 들떴다. 이미 나는 도수 없는 선글라스를 끼고 홍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때 실장님이 불러 세웠다. 


"다만 연령이 조금 걸려요"

"왜요?"

"사실 이 연령대면 노안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데, 검사해보니 선생님은 이미 시작된 거 같아요. 2년 정도 지나면 노안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머지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도 병원에서 노안이 온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마 수술을 하셔도 2년 후 즈음에는 노안 교정 안경을 따로 착용하셔야 할 듯해요. 그래서 이런 분들은 보통 저희가 적극 권하지는 않아요. 수술 여부는 고민해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실장님은 말씀대로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생각해 보라고만 하고 상담을 마쳤다. 깔끔한 상담 덕분에 노안이 온다는 것이 더 실감 났다. 




사실 나는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 보는 것에 있다 할 정도로 정적인 사람이다. 시간 나면 책 보고 영화 보고 티비 보고 사진 보고... 늘 가만히 무엇인가를 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래서 항상 얼굴이 늙는 노안보다는 눈이 늙는 노안이 더 두렵다고 해왔었다. 이제 그 즐거움을 누리는 데 불편함이 생긴다고 하니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상실감이 밀려왔다. 


집에 와서 시력 교정 대신 노안 교정을 검색했다. 노안 예방에 좋은 눈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수도 없이 많은 게시물이 검색되었다. 모두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때가 되면 여지없이 겪게 되는 사건들이 있고 그 앞에서 조금의 자유를 더 얻고자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의 흔적이 거기, 모니터 화면에 주르륵 펼쳐졌다. 산다는 건 확실히 다 똑같다. 


많은 예방법과 지금까지 나와있는 교정법 중에서 확실히 믿음이 가는 것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조금 더 완전한 교정법이 나오기를, 그래서 보는 즐거움이 더 허락되기를, 모든 안과 의사분들을 응원하고 싶다. 더 많은 자유가 허락되는 그날까지, 나와 모두의 눈동자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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