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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씨작가 Nov 30. 2024

처음처럼

11월 마지막 날

다행이었다. 


"9mm입니다. 1cm가 되지 않으니 당장 수술을 고려할 필요는 없겠네요." 


숨이 멈췄던 가슴이 서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병원을 나와, 나는 마음을 녹이며, 버스를 타고 에스테틱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따뜻한 손길과 은은한 향에 몸과 마음을 맡기니, 나는 긴장이 풀렸고, 마음의 병이 사라졌다. 그리고 코너에 있는 갤러리에서 작품 한점을 감상하기 위해 낯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코너에 자리 잡은 전시 공간, 그곳에서 낯선 작품들이 보였다. 1975년생 미국 작가의 작품은 세로로 길게 뻗은 그림이었고, 가까이 다가가니 그 안에 담긴 그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오일과 왁스로 두껍게 칠해져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조각품! 나무 조각은 관람객을 향해 있었다. 1층에 놓인 평평한 접시 위에는 검은 나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작가의 내밀한 감정을 은유하는 듯했다. 자유롭지만 연약한, 그러나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나비. 


작품수는 많지 않았지만, 큰 작업과 몇 가지의 오브제가 그를 상상하게 했다. 동시대 예술가로서 느끼는 그의 삶은 어떠할까?


작가의 작업은 마치 그 작가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니깐..

책들은 나선형 계단처럼 쌓여있었고, 캔버스 뒷면에는  'R' 모양의 나무 조각이 보였다. 큐레이터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작가가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라고 했다. 


친구는 그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였던 걸까?


오늘 참석한 결혼식에서는 25년을 함께 한 신랑의 친구와 하객들이 딴 딴따따 딴 따따따 라는 후렴구를 반복해서 불렀고, 12년 된 신부의 친구는 그녀의 따뜻한 배려심과 친절했던 마음을 하객들에게 소개했다. 그렇게오랜 우정을 강조하는 신랑, 신부의 사랑 이야기는 하객들에게 진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것은 잊고 있던 마음의 평온을 되찾게 해 주었다.

불안이 잠시 가시는 순간은 아마도 이런 시간일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기뻐하며,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들. 최근 들어 불면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작은 텐트 같은 내 마음 안에서, 나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곤 한다.

한 고문님은 '첫날밤' 이란 주제로 그림을 그리신다.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특별했으면 그렇게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 있다. 그만큼 처음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과 나는 매년 2회씩 전시회를 갖는다.


내일은 작품 철수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처럼 다시 또 만난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처음이 소중해지는 날이다. 나는 오늘 그런 마음으로 잠을 청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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