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주스를 마신 이후부터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에 빠지는 법을 배운 듯하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불안감도 한결 가벼워졌다. 어제는 막걸리에 레몬 하이볼까지 곁들였는데도 깊이 잠들었다. 예전 같으면 알코올이 과하면 뒤척이는 밤이 이어졌을 텐데, 어제는 고요하게 취했다.
아로마 향 때문인지, 아니면 체리 주스의 은근한 효과인지 모르겠다. 잠 걱정은 줄었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주중에 찍은 복부 MRI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 내 안에는 여전히 작은 걱정이 자리하고 있다.
며칠 전, MRI 촬영을 위해 좁은 기계 속으로 들어갔던 순간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질문이었지만, 그땐 진지했다.
"촬영 중에 잠들어도 되나요?"
전날 잠을 설친 탓에 하품을 참지 못했고, 기계 안에서 눈을 떠야 할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MRI 기계 속은 마치 숨 막히는 텐트 같았다. 거친 소음이 울려 퍼지는 동안 한 시간가량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발가락만 겨우 꼼지락거리며 내 작은 자유를 느꼈다.
'양말이라도 신고 올걸.'
차가운 기계 위에 누워 있는 동안 스쳐 간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품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눈물이 찔끔 났다.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채 갇혀 있으니 고역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MRI 촬영은 절대 잠들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기계가 내는 정체불명의 소음은 귀를 찢을 듯했다. 그 소리가 커질 때마다 주의사항에서 "놀라지 말라"라고 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기계 밖으로 나왔을 때의 해방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늘 밤도 별일 없이 잠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다시 책을 펼칠지도 모른다. 요즘 빠져 있는 글은 MBTI 명작 속 주인공 이야기다. 오늘 읽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이렇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하나의 난자를 최대 96개로 분열시켜 인간을 대량 생산한다. 그런데 그 신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모두가 '소마'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차가운 세계라니.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미래는 늘 비극적일 거라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 비극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라는 점이 새삼 서늘했다.
다행히도, 이 비극적인 세상 속에서 나는 아직도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체리 주스를 마시며 잠드는 요즘 나는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