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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크립토 앱은 왜 실패하나

완벽하게 만든 앱인데, 아무도 쓰지 않는다.

by 이은빈


아무도 쓰지 않는 ‘완벽한 앱’, 그리고 나이지리아의 버튼폰


완벽하게 만든 모바일 앱인데 아무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최신 스마트폰 대신 버튼만 있는 '버튼폰'을 사용해서 별표(*)와 숫자를 눌러 돈을 주고받는다. 한국에선 더 이상 찾기 힘든 그 버튼폰으로 말이다.


best-basic-phones-2.jpg?quality=50&strip=all&w=1024 한국에선 더 이상 찾기 힘든 버튼폰



‘앱’이 아닌 ‘환경’에서 답을 찾다


대부분의 크립토(가상화폐) 앱은 ‘스마트폰, 빠른 인터넷, 앱 설치’를 당연하게 전제한다. 하지만, 만약 해외에서 돈을 보내줬는데 앱이 자꾸 멈추거나 로딩만 길어진다면, 많은 사용자는 ‘이건 내 환경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결국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버린다.


이 글에서는 현지 은행들이 ‘숫자 몇 개만 누르면 송금이 끝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살펴보고, 왜 크립토 앱들이 그 환경에서 성공하지 못하는지, 구체적으로 비교해 본다.




아데바요의 12초 vs 4분의 경험


아데바요는 3년째 *966# 코드로 송금한다. 그는 스마트폰이 없고, 오직 버튼폰만 쓴다. 우리가 전화번호를 누르듯, ***966#**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면, 음성 안내나 문자 메뉴가 나온다. 그리고 숫자 몇 개만 더 누르면 송금이 끝난다. 인터넷 연결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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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라고스에 있는 여동생에게 5,000 나이라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2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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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친구가 보여준 ‘더 빠르고 저렴하다’는 크립토 앱은 어땠을까? 앱이 두 번 멈췄고, 15MB의 데이터를 써야 했으며, 같은 거래를 마치는 데 4분이 걸렸다. 그는 다시는 그 앱을 쓰지 않았다.


이런 일이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벌어진다. 크립토 회사들은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아름다운 모바일 앱을 만들지만, 정작 잘못된 인프라를 가정하고 출발한다. 나이지리아 사용자의 89%는 여전히 피처폰 또는 저성능 안드로이드 기기를 불안정한 인터넷과 함께 쓴다. 진짜 디지털 결제 인프라는 ‘앱스토어’가 아니라 USSD 코드다.



USSD, 보이지 않는 금융의 뼈대


USSD(‘Unstructured Supplementary Service Data’)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 없이도 은행 업무, 송금, 휴대폰 요금 충전 같은 서비스를 버튼폰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오래된 모바일 기술이다.



Zenith-966-Generic-Ad-1200x627-1000x523.jpg USSD 광고


Zenith Bank의 경우처럼, *966#을 누르고 통화 버튼만 누르면 메뉴가 뜬다. 2G 통신만 있어도 되고, 데이터 요금도 들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휴대폰만 있어도 충분하다. 실제 상황을 보면, 사용자 10명 중 6명은 피처폰, 나머지 4명은 100달러도 안 되는 저가 스마트폰을 쓴다.


데이터 1GB 가격이 최저임금의 8%에 달하고, 인터넷은 하루에도 몇 번씩 끊긴다.


USSD는 한 번 쓸 때 10 나이라면 되지만, 크립토 앱은 데이터비 133 나이라, 거래 수수료 50 나이라가 든다. 결국 USSD가 18배 저렴하다.


Screenshot 2025-06-03 at 4.52.38 PM.png USSD 구조 - 출처: 이은빈
Screenshot 2025-06-03 at 4.51.11 PM.png USSD 아키텍처 - 출처: 이은빈





데이터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현지 은행들은 최근 구글 등과 협력해, AMP(초경량 모바일 페이지)와 USSD를 연동하고, 신규 고객이 광고를 보고 서비스에 유입되는 흐름까지 추적한다. 예를 들어, 구글 광고를 보고 AMP 페이지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USSD로 송금 시작’ 버튼을 누르면, 이 모든 과정이 데이터로 기록된다.

TwG_Zenith_Inline_2.jpg 광고를 누른 신규유저의 데이터를 기록하는 AMP 페이지


하지만 한계도 있다.


기존 고객들은 이미 *966# 같은 코드를 외워, 다이얼러에 직접 입력해 송금한다. 이 과정은 은행 내부 시스템에서만 기록될 뿐, 외부 광고 데이터와는 연결되지 않는다. 즉, 마케팅 퍼널 분석이 가능한 건 ‘광고 유입→신규 송금’뿐이고, 이미 서비스를 쓰는 수백만 기존 고객의 행동 데이터는 따로 봐야 한다.



크립토 앱은 왜 실패할까?

크립토 서비스들은 모든 과정을 앱-기반 디지털 퍼널로 설계하고, 외부에서 행동을 쉽게 트래킹 하려 한다. 하지만 실제 나이지리아 시장에서는, ‘USSD+현지 인프라’가 너무 강력해서 크립토 앱이 이 경쟁을 뚫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사용자가 버튼폰만 쓰는 것은 아니다.

대도시의 청년, 일부 중산층은 오히려 국경을 넘어 송금하고,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용도로 비트코인/USDT 등 크립토를 점점 더 활용한다.

Screenshot 2025-06-03 at 7.16.53 PM.png 실제로 수요가 낮은 크립토 투자 시장 - 출처: 이은빈

그래서 Bundle Africa와 같은 스타트업이 한때 성장했지만, 결국 인터넷 불안정, 데이터 요금 부담, 낮은 스마트폰 보급률의 벽을 넘지 못하고 2023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데이터 요금이 들지 않고, 네트워크 불안에도 문제없는 USSD 뱅킹을 택한다.

5fc4f7ab-e9a9-4fbb-8e08-044f66862961.png Bundle Africa의 크립토 앱 인터페이스
F1jpqkUXsAAPnO9?format=jpg&name=medium 결국 번들 아프리카는 2023년 거래소 서비스를 종료했다.





‘블록체인+버튼폰’의 연결, 어디까지 왔나?

스마트폰조차 없이, 버튼만 있는 휴대폰으로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접속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프리카의 현장에서는 이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는 실험들이 하나둘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버튼폰(Feature phone)’과 USSD, 그리고 블록체인이 있다.


1. ‘온·오프램프’—현지 돈에서 글로벌 코인까지, 단 몇 번의 버튼으로


아프리카 농부가 자신의 버튼폰에서 *998# 같은 코드를 누르는 순간, 그 안에서 나이라(현지 화폐)가 코인으로 전환되어 해외로 송금된다. 반대로, 외국에서 들어온 코인도 버튼폰 한 번이면 현지 돈으로 바뀐다. 이 과정은 몇 년 전만 해도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은 현지 금융회사와 블록체인 파트너가 백엔드에서 API로 연결해 이 복잡한 거래를 ‘보이지 않는 자동화’로 만들어주고 있다.


2. ‘KYC 간소화’—은행 계좌 없어도, 전화번호 하나로

나이지리아에서는 은행 계좌나 신분증이 없는 사람도 많다.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이 닿지 못하는 곳, 여기서는 전화번호 하나만으로도 본인 인증(KYC)이 가능해지는 기술이 등장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없이, 가장 기본적인 휴대폰만 있으면 새로운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3. ‘스마트컨트랙트 통합’—숫자를 누르는 순간, 블록체인 계약이 실행된다

버튼폰에서 숫자 몇 개만 입력하면, 그 뒤에서는 복잡한 블록체인 스마트컨트랙트가 자동으로 실행된다. 농부가 대출을 받고 갚을 때마다, 그 내역이 즉시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신용 기록’이 만들어진다.


4. ‘데이터 관리와 리스크 트래킹’—인터넷이 약해도, 거래 기록은 글로벌로

나이지리아처럼 인터넷이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모든 금융 거래를 실시간으로 글로벌 블록체인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현지 파트너 서버에 데이터가 먼저 저장되고, 네트워크가 연결될 때마다 블록체인으로 싱크(sync)된다. 이렇게 쌓인 거래 기록은 전 세계 투자자, 기관이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 중 1번과 관련해, Gluwa라는 회사를 예시로 들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Gluwa의 ‘하이브리드 인프라’ 실험—수백만 거래가 현실이 된 이유



Gluwa는 한국인 CEO가 나이지리아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운영하며, 버튼폰(USSD)과 블록체인(특히 Creditcoin)을 연결하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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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농부가 버튼폰에서 코드를 누르면, 현지 금융회사 백엔드와 Creditcoin 블록체인이 API로 연결되어 대출, 송금, 상환 등 모든 내역이 ‘블록체인 신용 기록’으로 남는 프로세스를 성공시킨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1) *996# 같은 코드를 누르면,
→ 현지 금융사(마이크로파이낸스) 메뉴가 뜨고,
→ 대출/송금/상환이 모두 버튼 입력만으로 끝난다.
이 모든 거래 내역은 현지 금융사의 서버에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2) 현지 서버는 주기적으로—혹은 즉시—
→ 이 거래 데이터를 글로벌 블록체인(Creditcoin) 네트워크로 푸시(push)한다.
이때 API와 스마트컨트랙트가 자동으로 연결돼,
실거래 내역이 ‘변조불가’한 블록체인 트랜잭션으로 바뀐다.


(3) 신용기록은 이름 대신 익명화 코드로 블록체인에 남는다.
이 정보는 글로벌 투자자, 다른 금융사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신뢰와 투명성이 ‘국경을 넘어’ 작동한다.


(4) 각국 규정(KYC/AML)은 현지 파트너사가 책임지고,
데이터 이동은 모두 암호화, 개인정보는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
완전 자동화는 아직 아니지만, 이미 수백만 거래가 이렇게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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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은빈



쉬운 이해를 위해 상상해 보자. 나이지리아 농부 아데바요가, 인터넷도 없이 옛날 휴대폰에서 *996#을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대출”을 선택하면, 마치 은행 직원과 대화하듯 모든 과정이 버튼 입력 몇 번이면 끝난다. 그런데 이때마다 아데바요의 거래 내역은 현지 금융회사의 컴퓨터에 먼저 저장되고, 나중에(혹은 실시간) ‘블록체인’에 자동으로 기록된다. 이 기록은 누구도 위조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 심지어 미국이나 유럽의 투자자가 “아데바요의 상환 내역을 보고 투자”할 수 있게 연결된다. 앱도 필요 없고, 데이터도 필요 없다. 버튼폰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도 신용이 통하는 금융 생태계가 열린다. 바로 이게 Gluwa가 아프리카에서 실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혁신’이다.



결론: 나이지리아 시장에 맞는 기술 전략


1. 현실적인 하이브리드 설계가 시장을 연다.

USSD와 버튼폰은 프런트엔드일 뿐이다. 사용자가 사용하는 디바이스(버튼폰, 앱 등)는 블록체인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실제 데이터 기록과 블록체인 연동은 현지 파트너사의 백엔드와 API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든 블록체인 연동은 로컬 파트너의 서버를 거친다. 사용자 단말은 단순한 인터페이스고, 블록체인과의 연결은 서버 단에서 처리된다. 이 구조는 낮은 인터넷 환경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준다.



2. 투명한 온체인 신용 기록을 고민해야 한다.

오픈 블록체인 인프라는 개발자에게 자유를 준다. Creditcoin 같은 오픈 시스템은 분석툴, 지갑, 온·오프램프, 투자도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3. 폐쇄적인 앱보다, 개방형 API와 데이터 표준이 글로벌 확장의 출발점이다.

REST/gRPC API, SDK를 활용하면 누구든지 통합이 가능하다. API만 연결하면 복잡한 블록체인 인프라 없이도 커스텀 개발이 가능하며, 원한다면 직접 노드를 운영할 수도 있다.



기술의 최전선이 앱스토어가 아니라 ‘버튼폰+블록체인’의 놀랍도록 실용적인 연결에 있음을 더 많은 창업가와 개발자가 알아차릴 때다.





이은빈

테크 PM. 글로벌 시장을 연구하고 씁니다

(이 글에 사용된 모든 도표와 이미지는 © 저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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