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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Jun 26. 2024

요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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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돌입한 동생이 같이 헬스를 다니자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의 체중 감량을 전적으로 응원하는 엄마가 기꺼이 먼저 카드를 긁었다. 부담스럽다. 내 카드로 헬스를 다니던 시절도 돈이 아까워서 나름 열심히 운동했는데, 남의 돈으로 다니려니까 눈치가 보여서 더 벌벌 거리게 된다. 일주일에 세 번이면 그렇게 못 나가는 정도도 아니지 않나? 요즘 여러 일로 꽤나 바쁜데 말이다. 운동을 하다 보니 식단에도 식구들의 눈총이 쏠리는데, 간식을 최대한 덜 먹는 대신에 하루 두 끼는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방금 전에는 샐러디 칠리베이컨 웜랩 샌드위치를 먹었다. 노력하지 않는다고 동생이 타박하지만 뭘 어떡하겠어. 먹는 거라도 마음 가는 대로 하지 않으면 대체 몇 개나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가만히 누워서 내일 눈 뜨자마자 해 먹을 라면 요리를 생각한다.     


2

요즘 나는 라면 요리에 맛 들렸다. 특히 신라면으로 하는 요리에 맛이 들렸다. 집 앞 슈퍼에서 신라면 5개를 묶어서 3600원에 팔길래, 한 묶음을 사 와서 하나씩 해본다. 신라면으로 하는 마제소바를 세네 번은 한 것 같다. 설탕 반 큰 술에 간장 한 큰 술, 라면수프는 반 봉지를 넣어 양념해 미리 익힌 신라면 위에 붓는다. 여기에 계란노른자를 섞어서 먹는다. 원래 레시피대로라면 프라이팬에 대파 썬 것 조금, 식용유를 섞어 파기름을 만들고 양념장을 볶아야 하지만 요리를 못해서 라면수프가 못 섞이고 떡이 져 버린다. 시행착오 끝에 파기름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양념장과 계란노른자만 부어서 섞어 먹는다. 내 입맛에는 이게 제일 잘 맞는다. 신라면 투움바 파스타도 해 봤는데 짭짜름하니 맛이 있었다. 원래는 간단하게라도 뭘 해먹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나 고물가 시기에 예전처럼 내키는 대로 배달을 자주 시킬 수는 없다. 물론 여전히 배달 앱의 ‘귀한 분’ 등급이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3

요즘 나는 외식비를 다소 아껴서 꽃을 산다. 기왕 아끼는 거 적금이라도 하지 그래, 라고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지만 못 들은 척하고. 원래는 네이버쇼핑에서 가장 저렴한 꽃다발 배달을 받았는데(대략 10000원에서 15000원) 그마저도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껴져서 일주일 전에는 꽃시장을 가봤다. 꽃시장은 마감이 정말 일러서, 정오가 되면 파장인 곳도 수두룩하다. 이래서는 낮 시간대에 집안일을 하는 내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검색 끝에 오후 3시에 마감을 하는 꽃시장을 갔는데, 다들 바쁜 현대인이라서 그런지, 2시 59분까지 꽃을 결제하는 사람들로 꽤 북적였다. 나는 분홍색 장미 한 단과 빨간 장미 두 단을 샀다. 각각 5000원과 2000원이었고 신문지에 둘둘 말린 꽃을 한아름 들고 가니 그 양이 난감하지만 기분만은 좋았다. 2000원에 산 장미 두 단은 역시 금세 시들었지만, 5000원짜리 장미는 꽤 오래간다. 예쁜 생화는 내 즐거움 ‘버튼’ 중 하나구나. 잘 기억해 둔다. 루쉰이 어두운 시대일수록 밥을 잘 먹고 옷을 잘 여미라고 한 것은 즐거움이 있어야 그 시간을 감당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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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의 이유를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다. 요즘 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집안일을 한다. 교회 청년부에 잘 쓰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는데, 그 스피커로 노래를 틀으니 좋아서 비슷한 걸 하나 샀다. 핸드폰을 블루투스로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 놓고 스트리밍 앱이나 유튜브에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늘 듣던 노래지만 스피커로 듣는 노래는 이어폰이나 핸드폰으로 듣는 노래와는 또 다르다. 소리의 부피와 질감이 더 잘 느껴진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에도 창이 있는 것 같아서 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온다.     


5

요즘 나는 화가 나고 화가 난다. 얼마 전에 공장에서 사람이 스무 명 넘게 죽었다. 이태원에서 죽은 사람들을 가지고 ‘놀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던 것들, 이들은 과연 일하다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 정도 가지고 사업주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누가 하겠냐고 말하려나? 언론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이렇게까지 많이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서 놀라워한다. 마치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시행하던 시절이라도 되는 것 같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나라에 들어와 노동력을 제공하고 GDP를 높여주는 이들에 대해서 백 번 감읍해도 모자랄 판에, 안전하게 일하시고 많이 벌어가시라고 모셔도 부족할 판에,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면 인종주의의 노예들 같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백인이었어도 그 난리를 쳤을까?      


막상 있는 아이들에게도 각종 차별, 폭력, 학대 등으로 고통을 주는 나라. 교권을 높이겠답시고 (더 많은 교사들을 채용해서 학급 당 아동 수를 줄이고, 교사의 노동량을 줄이는 등의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학생인권조례나 폐지하려 들고, 폭력적인 체벌이나 옹호하는 나라. 이 나라는 아이들에게 행복과 권리를 보장해주지도 않으면서, 일단 태어났으니 사회에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거나 행복을 추구하거나 할 생각은 하지도 말고 얼른 커서 어른들을 부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을 협박하면서 불행에 짓눌릴 아이들을 낳으라고 한다. 자기들은 털끝만큼도 책임지지도, 작은 친절도 베풀진 않을 거지만, 어쨌든 자기들과 이 나라는 잘 먹고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애국심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 사실 그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들의 공포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훨씬 인도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은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유치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민청” 얘기에 게거품 물고, (아무리 ‘산재공화국’이라지만) 사지에 가까운 노동조건에 외국인 노동자를 밀어넣는 걸 보면 어설픈 혈통주의와 인종주의의 유령이 이 나라를 배회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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