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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Aug 26. 2022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관하여

2003년 대학교 2학년 , 처음 병원 실습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지방 도시의 작은 병원.

응급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었지만 응급 환자라기보다는 밤이면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나, 경찰차를 타고 들어왔다. 쓰러진 바로 앞에 다른 병원이 있었음에도 나라 병원이라는 이유로 골치 아픈 환자(?)들은 119나 경찰들이 환자를 그곳으로 데려 왔다. 흔히 말하는 영세민,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는 노인들, 무연고 시신, 사회에서 끈끈한 관계 속에 속하지 못하고 변두리로 떨어진 사람들이 찾는 그곳.  



 그 병원 응급실 한쪽 귀퉁이, 출입자들에겐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사극에서만 본 한센병 부부가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 허리가 굽어 키는 150cm이 겨우 될 것 같은 할아버지는 자신보다 20킬로그램 이상은 몸무게가 더 나가는 아내를 간호하고 있었다. 중풍으로 몸이 성치 않는 할머니를 간호하느라 할아버지도 지칠대로 지쳐 손을 놓고 함께 입원하고 말았다.



책으로는 배웠지만 막상 한센병 환자를 처음 봤을 땐 혹시라도 내가 병에 옮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실습하는 동안 수차례 설사를 했던 할머니의 기저귀, 환의 교환은 병원 말단에 존재했던 학생 간호사 차지였다.TV 속에서 본 나병 환자는 ‘문둥병’으로 그려져 사회와는 격리된 두려움의 환영처럼 남아있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낳게 했던 그들. 미디어에선 붕대로 온 몸이 감싸져 있었고, 눈도 검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실습 하는 동안 미디어가 만든 편견의 붕대를 하나씩 벗게 되었다. 그들의 몸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80이 넘는 고령이었고, 오랫동안 한센병 합병증으로 몸의 변화가 선명했다. 나균에 감염된 손과 피부는 이미 타다 남은 양초처럼 녹아 뭉퉁그려져 있었다. 관절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어져버렸다.  모나리자처럼 눈썹이 없었다. 눈도 지독한 균이 갉아먹어 붉게 변해있었다. 눈을 감으면 피눈물이 곧 떨어질 것 같았다. 처음엔 그들의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웠다. 분비물이 묻은 기저귀를 교환하고, 체액이 묻은 옷들을 만질 때는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기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을  책으로 떨쳐버릴 수 있었다. ‘전 세계 인구의 95%는 한센병에 자연 저항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균이 피부 또는 호흡기를 통하여 체내로 들어오더라도 쉽게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나균을 배출하는 환자의 경우도 리팜핀(리팜피신) 600mg을 1회만 복용하여도 체내에 있는 나균의 99.99%가 전염력을 상실한다. ’는 내용은 내가 부부를 간호할 때 좀 더 마음을 열 수 있게 해 줬다.

  


수십 년 전엔 예방 관리 목적으로 그들을 사회와 격리하려 전염병을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치료약이 계발되고 관리만 잘 되면 전염원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요즘은 일반 피부 환자처럼 자유로이 생업에 종사하고 살아간다. 2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사회와 단절되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결혼 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 차로 5분 거리에 한센병 환자들의 거주지 성좌원이 있다. 주변이 숲으로 둘러 쌓인 그곳 환자들은 오랫동안 한센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회에서 생활하기보다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다. 가끔 여름이면 그곳 사람들이 가축을 키워서 변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곳인지는 들어가서 본 사람은 없었다. 소문만 무성한 비밀의 공간으로 이 도시 사람들에겐 남아 있었다.



며칠 전 출근길에

‘작은 사슴 별자리에 닿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왔다. 별자리는 안동 성좌원을 뜻했고, 작은 사슴은 그들처럼 사회와 격리되어 생활했던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을 의미했다. 물리적 거리는 있었지만 마음만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이었다. 바쁜 중에 짬을 내어 이곳은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달려간 곳은 큰 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입구엔 붉은색 커다란 성좌 교회가 보였다. 1972년에 재건축한 교회는 한때 신도들이 700명이 넘던 곳이지만 1994년 성좌원 주민들의 고령화, 신체 불편 등의 이유로 문을 닫고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그곳엔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지역 청년 예술가들이  성좌원 주민들에게 미술 교육을 진행하고, 소록도의 해록  예술회 14분의 작품과  18명의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한센인 거주 공간이라는 편견으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예술 작품으로 생기를 얻었다.



성가대 연습실은 갤러리로, 다른 공간은 그들이 사용한 물건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숨 쉬는 미디어 아트 공간으로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유독 그림들은 숲이나 자연에 관한 그림이 많았고, 그림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외로움, 그리움의 느낌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도시 안에서 숲으로 둘러 쌓여 그들만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감정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멈춰버린 교회의 빈 공간에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그들은 80 넘는 ( 평균 나이가 82세) 세월을 견뎌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어떤 시기엔 사회와 단절되어 그들만의 세상에서 살았고, 자식을 낳지 못했으며 혹여 자식을 낳으면 그곳을 떠나 고아원으로 맡겨졌다. 사회에서 자신의 부모가 한센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차별을 겪게 된 사람도 있었다고 전시 관계자 분이 이야기해 주셨다.




음악이 흐르는 전시 공간 <은하수>에선 청년 작가들과 함께 성좌원 주민들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 고장 난 시계, 구겨진 냄비 뚜껑, 채칼, 털신, 틀니의 한 조각, 낡아 버린 물건들이 우주 공간의 무중력 상태서 빛나는 별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오묘한 우주 공간 속에서 나는 20년 전 나의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의 붕대를 하나하나 벗겨 주었던 노부부의 삶이 떠올랐다. 작품 설명을 해 주시는 분에게 그들과의 인연으로 나는 이곳에 왔노라 하면서 작품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 나갔다.




최근 온갖 미사여구로 찬사 받고 있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는 인간들은 우생학적 관점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을 격리시키거나 혹은 불임화 시킨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과 100년 전 미국에서는 독일의 나치 이전에 이미 보편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기준에서 부적합 사람들을 사회와 분리시키고, 법으로 불임화 시켰다. 우리 사회에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내가 간호학생이었던 20년 전에도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알코올 중독자들이 강제 입원되고,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수용소와 다름없는 정신 병원에 입원 치료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야만 했고, 무지에서 비롯된 사회의 차가운 편견의 시선 때문에 평범한 가정생활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다.



1층, 2층, 3층 교회 건물을 오르면서 주민들이 피와 땀으로 세운 교회 건물이, 창 밖으로 보이는 숲이, 십자가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었는지를 마음으로 전해왔다.


“ 어떤 사람에게는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 -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100년도 겨우 살다가는 인간들은 우주의 시간 거대한 역사의 관점에서는 점위의 점 ,  아니 점위의 먼지보다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빈약하고, 허점투성이 관점으로 같은 인간을 구분 짓고, 우열을 가리는 행위 속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사회 속에 속하지 못하고 슬픈 인생을 살아간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그들을 가둬둔 울타리가  청년 작가들의 용기 있는 시도를 통해 무너지길 기도해 본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사실도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 서툰 글이지만 남겨본다.




*전시는 9월 4일까지 열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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