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힘쓰는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영준 Nov 01. 2020

꽃의 정치학

화환, 꽃다발, 장미 한송이

몇 년 전부터 조화, 조의금 사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유있는 사람들부터 시작한 흐름이긴 하지만, 장례를 가급적 간소하고 단촐하게 지내려는 유가족의 의지가 반영된 흐름이기도 하다. 화환 한개에 보통 10만원 정도 하고, 대부분 장례가 끝나면 버리거나, 일부 약삭빠른 화원에서는 재활용하기도 하니까. 보통 화환을 보내면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진정성의 값은 더욱 떨어지지 싶다. 아, 그리고 꽃이 오면 보통 조의금이 오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륵과도 같은 것이 장례식 근조화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시적 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화환은 사회연결망을 표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굴 안다는 과시이면서,
유가족에게 사회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그 의미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충분히 꽃을 거절할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을 떠난 사람이 직접 가치를 누리는 것도 아니므로. 물론 화환이 많을 수록 망자가 인생을 못살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겠지만. 그조차도 누군가에게 애써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이들에게는 무익한 것이다.


꽃은 정체성의 표현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사회당은 빨간 장미를 자주 사용한다. 붉은 색은 노동자의 열정과 진심을 뜻한다. 2차대전 당시 순교한 사회주의 레지스탕스들의 피와 희생을 기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의당도 장미를 지지자들에게 보내곤 했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선거 캠페인에 자주 활용된 이미지가 장미다. 심장의 피처럼  붉은 장미는 사랑과 열정의 표현이다. 꽃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집단의 정체성이 된다.

서초동 검꽃은 새로운 상징정치다.


서초동 대검과 중앙지검 주변에 350여개의 검꽃이 피었다. 문제의 윤석열 국정감사와 함께, 화환은 강력한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화환 철거 여부로 정치권이 들썩거렸다. 보수당 소속의 서초구청장은 어쩔 수없이 철거해야 한다고 계고장을 보냈다. 주최측이 언제까지 기획한 캠페인일지는 모르나, 뉴스가 된 것 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성과 아닐까. 윤석열과 미테랑은 무엇이 닮고 다른 것일까.

서초동 대검 주변을 채운 350여개의 화환. 주관단체는 검꽃이라고 불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공지능은 만사땡큐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