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힘쓰는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영준 Nov 06. 2020

공화국 말하는 윤석열

절반의 지지, 절반의 반대 받는 '공화국 검찰', 이유는 무엇인가

윤석열은 지난 2020년 11월 3일 충북 진천 검찰연수원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검찰이다. 검찰 제도는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국 검찰에서 시작되었다. 검찰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공화국 정신에서 탄생한 것인 만큼 국민의 검찰이 되어야 한다.

이 발언을 듣고 읽은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이라는 표현에 관심을 가졌다. 공개적인 주장과 표현에 제한이 있는 검찰총장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조직 정체성, 그리고 국가관에 대해 함축적으로 말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힘든 왕정 타도와 가톨릭 교회의 정치 간섭 배제를 이뤄 낸 시민혁명이다. 재산권의 자유와 신분제 폐지를 완성시킨 대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의 발언은 매우 다면적으로 해석된다.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을 운운한 것은 단순히 검찰의 역사적 기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향한 시각이 반영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마치 “문 정부가 ‘앙시앙 레짐’(ancient regime)이라고 비판하기 위해 서양 혁명사를 인용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듣기에 딱 좋은 수사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과 갈등하고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은 같은 해 11월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질의-답변 과정에서 ‘공화국 발언’을 정면 비판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망각한 채로 (단어를) 차용했다는 것이 상당히 유감스럽다. 검사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검찰 총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행보와 언행을 하는 것은 상당히 심각하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추미애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프랑스 혁명 세력의 입장이고, 검찰을 비롯한 기성 국가 권력 기관들은 모두 ‘구제도의 모순’으로 비견되는 것으로 들린다. 촛불 혁명을 주창한 정부와 행정수반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 프레임을 참칭해 쓰는 것은 몹시 불쾌하다는 맥락처럼 읽히는 것이다. 법무장관 스스로 불편함을 내비치도록 촉발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 증거 중 하나다.     


프랑스혁명은 앙시앙레짐을 시민세력이 전복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촛불혁명에 의해 검찰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검찰 특권 분산, 인권수호기관으로 재정립하는 등의 방향이다. 검찰 개혁 대상의 총수인 총장이 프랑스혁명을 거론했다니 아이러니하다.


윤석열이 별다른 수식어와 배경 설명을 붙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추미애와 신동근 등의 여당 정치인들은 윤석열의 말을 매우 정치적으로 받아들인다. 정확히는 “정치적 의도가 매우 짙게 깔린 전략적 발언”으로 인식한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스스로 공화주의자임을 피력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정치 지망생이라고 오해받고 있는 검찰 총장으로서 거대담론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았어야 하는 것일까.

 


    

윤석열은 보수라는 입장

공화주의 논란은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임명되기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프랑스 혁명 논란’이 일어나기 1년 4개월 전, 국내 주요 언론들은 윤석열을 가리켜 ‘자칭 보수’라고 보도했다. 쟁점이 된 것은 2019년 7월 8일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윤석열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답변서 내용이었다. 해당 문건에는 “본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인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다”라고 기록되었다. 화폐금융론 연구자이자 신자유주의자인 프리드먼을 인상 깊은 작가로 손꼽는 면모는 분명히 보수주의자라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스웨덴-핀란드식 복지 정책 등을 중요한 모델로 삼는 문재인 정부의 구성원으로서는 다소 이질적인 모습이다.

윤석열의 안보관과 사회관은 그를 가리켜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평가에 더욱 힘을 싣는다. 그는 국회 답변서에서 “대한민국의 주적은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내놨다. “검사로서 법 집행을 하는 업무의 특성 상 급진적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한다”는 관점도 내비쳤다. 말과 글로만 놓고 보면 엄연히 한국의 전형적 보수 리더들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윤석열은 이후의 ‘공화국’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제시했다. 촛불집회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한편, 동성 결혼이나 동성애자 차별에 대해서 “성소수자로서 차별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존의 보수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왕당파 보수‘들은 매우 불편하게 여길 대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윤석열이 한국 보수가 아니라 서구의 보수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청문회 답변서’ 내용은 미국의 민주당이나 프랑스의 공화당, 전진당 정도 되는 중도보수진영에서 공감하기 쉬운 콘텐츠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애초에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앉히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정경심의 말대로 그가 “우리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민주당 정부와 다른 사고와 입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검찰 총장 임명은 엄연히 정무적 판단이 깔린 행위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의 내정은 애초부터 ‘전략 미스’였다고 볼 수 있다.      



공화주의와 공정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화국 검찰'과 '공정'이 갖는 관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이 말한 프랑스 혁명 이후의 검찰은 왕의 자의적 사정 기구가 아닌 법률에 의해 역할이 제한되는 조직이었다. 혁명 이전에는 검찰을 "왕의 검사들"이라고 불렀다. 살인이나 절도, 강간과 같은 중죄를 저지른 자들을 수사하고 벌주는 전통적 형사 기능 이외에, 왕을 대상으로 한 역모를 꾸미거나, 반체제 운동을 기획했거나, 개신교를 믿는 이들을 탄핵하고 소추하는 것이 왕정 시대의 검찰 기능이었다.


그렇다 보니 검찰 권력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행사되었다. 권력자는 왕에게 잘 보여 죄를 탕감받고, 주류에서 밀려나거나 힘이 없는 자들은 원래 저지른 죄의 갑절만큼 처벌을 받았다. 왕정시대의 검사는 지방 중소귀족이 신분을 상승시키고 권력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통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권문세가에게 잘보이기 위한 수사가 잇따랐다. 한마디로 검찰 권력은 '불공정 권력'이나 다름 없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전문.

1789년 5월 국민의회가 결성되자 각 정파들이 새로운 검찰 제도를 만들기로 했다. 왕정시대의 제도 그대로 수사와 소추 기능을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 세력이 만든 인권 선언 16조는 검찰의 절대 권력화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권과 소추권을 확연히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효과가 오래 가지 않았다. 왕정 타도 이후 들어선 로베스피에르 정권은 검찰권력의 제한 원칙을 무시하고 최고 행정 기구인 공안위원회가 수사와 기소, 고발 등의 절차를 간소화시키는 법을 시행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최소한 허용되어야 할 자기 방어나 변론 등도 제한되었다. 반혁명 행위의 징후라도 발견되면 물증 없이 혁명 재판소에서 배심원들을 통해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었다. 검찰은 재수 없는 자들을 단두대로 보내기 위한 합법적 통로였다. 로베스피에르의 독재 시기 동안 공화국 검찰은 권력의 시종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혁명 재판소.

시민들이 공포 정치를 탄핵하고, 여러 공화 정부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폴레옹 시대가 도래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1808년 최초의 형사소송법을 제정한다. 신체의 자유, 재산권 등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본적 내용 이외에 형사절차의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왕정 시대의 권력검찰 -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 검찰 - 혁명 정권의 독재에 부역하는 검찰 등 다양한 시도와 좌절 끝에 근대 검찰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나폴레옹 시대는 황제 시대였지만 제정의 리더쉽과 공화정의 체계적 행정을 결합한 '보나파르트주의'를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레퓌스와 에밀졸라.

물론 그 이후에도 프랑스 검찰은 종종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다. 유대인이자 알자스 출신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1894년 독일에 군사 기밀 서류를 넘겼다는 의혹으로 기소되어, 최고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반영된 민족주의적 편견이 재판부의 최종 판단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제3 공화국을 엄청난 논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급기야 1889년 에밀 졸라가 '르 로르'지(편집장 : 조르주 클레망소) 1면에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발표한 이후 프랑스는 검찰 지지파(드레퓌스 반대파)와 검찰 반대파(드레퓌스 지지파)로 쪼개졌다. 뜨거운 논쟁 속에서 부담을 느낀 프랑스 대통령은 드레퓌스에게 특사를 베풂으로써 문제의 해법을 모색했다.


공화국 검찰의 역사는 결코 영광의 기록인 것 만은 아니다. 이런저런 좌충우돌 끝에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사, 소추 시스템으로 정착된 것이다.



   

이 시대가 묻는다, ‘윤석열 검찰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검찰’, 특히 ‘윤석열 검찰’은 무슨 평가를 받고 있는가. 과연 공화국 검찰의 가치는 명확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윤석열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도부터 살펴봤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020년 6월 조사한 ‘윤석열 검찰총장 중간평가“(전국 18세 이상 성인 500명, 총 통화 9744명 응답률 5.2%)에 따르면 ’잘함‘이 45.5%, ’잘못함‘이 45.6%, ’잘 모름‘이 8.9%로 나타났다. 윤석열 검찰을 둘러싼 여론이 절반으로 쪼개진 셈이다. 오마이뉴스 측은 구체적인 정치 성향에 따른 응답 성향도 분석했다. 진보층은 62.9%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고, 보수층은 57.7%가 ”잘하고 있다“고 했다. 중도층은 긍정률이 52.8%에 달했다(부정은 43%). 윤석열은 보수층과 중도층에서는 절반이 넘는 지지를, 진보층에서는 60%에 가까운 비토를 받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과 정치-정책적으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 추미애에 대한 여론도 살펴봤다. 혹시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에서다. 지난 2020년 10월 21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추미애 장관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를 발표했다. 동 데이터에 따르면 추미애가 “잘했다”고 평가하는 여론은 46.4%였다. “잘못했다”는 여론도 46.4%였다. 진보 성향 응답자 중 71.%는 수사지휘권 발동을 긍정했고, 보수 성향 응답자 중 72.7%는 부정했다.


두 조사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은 국민들 중 절반에게는 확실한 지지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확연한 반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약 4개월에 가까운 시간차(2020년 6월, 2020년 10월)를 두고 유사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연히 “우리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고있다”고만 평가할 일일까. 아니면 윤석열 신드롬이 갖고 있는 고유의 한계 때문일까.


'윤석열 검찰'에는 '네거티브'는 있지만 '포지티브'는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의 '공화국 검찰'이 절반의 허들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포지티브의 부재' 때문이다. 조국, 추미애, 유재수, 송철호와 같은 권력자들을 상대로 한 엄단의 이미지는 존재하지만, 약한 자를 돕고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는 것과 같은 스토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의 기간 동안 '윤석열'이라는 키워드로 빅데이터를 돌려 본 결과(언노운데이터 협조, 소셜메트릭스), 가장 대표적인 연관어는 검찰(1위, 118,279건), 조국(2위, 84,284건), 수사(4위, 53,443건), 개혁(5위 41,376)같은 것들이었다. 윤석열 검찰은 거대담론 속에서 충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의 연관어도 살펴 봤다. 수사(1위, 18,703건), 국정원(2위 17,954건)이라는 표현 이외에 외압(12위, 6,046)이라는 표현이 중요한 화두로 나타났다.


 2013년이나 2019년의 공통점이 있다면 "살아 있는 권력과 정면승부하는 투사" 쯤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핍된 부분도 여전했다.  민생 사건에 대한 관심이나 피해자의 권리 찾기와 같은 '착한 권력'으로서의 속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본인이 특수 검사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빚어지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검찰'은 권력 사건 이외에도 수많은 국민의 법적 사정을 다루는 기관 아닌가. 공정 이슈를 정치화하는 데 성공한 윤석열 검찰은 과연 남은 임기동안 '포지티브'를 구축할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해 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의 정치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