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주 Feb 24. 2024

인간이란 무엇인가

<괴물> 영화에세이

(*스포 없음)

-

어떤 영화는 각인된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도, 처음 보았던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그랬고 <허공에의 질주>가 그랬으며 <아무도 모른다>가 그랬다.


그리고 아마도 <괴물>이 그럴 것이다.


스포를 하지 않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스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여기에 들어와 이 글을 읽게 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고 이 영화를 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느낀 무수한 감정들에 아직 명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났을 때 느낀 감정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깨닫게 되기까지 짧으면 수일 길면 수년, 어쩌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미나토와 엄마 사오리 그리고 주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아이와 둘뿐인 단출한 가정. 사오리는 밝고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나간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끼니를 챙기고 아이에게 장난을 건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의연하게 대응할 줄도 안다. 그렇게 아이와 자신을 지켜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미나토에게서 뭔가를 느낀다.


분명,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예전의 미나토가 아니다. 아이는 뭔가를 숨기는 듯하다. 불안과 초조가 엿보이고 어딘가를 다쳐 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사오리는 결국 미나토의 두 눈을 보며 천천히 묻는다.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그리고 미나토의 눈빛.


관객은 작품의 초반, 사오리의 시점을 따라가며 함께 초조함을 느낀다.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걱정하다가 끝내 주변의 누군가를 의심하게 된다. 친구? 선생님?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일까? 미나토는 분명 괴로워하고 있다. 그 실체를 알고 싶다. 진실을 드러내고 발가벗겨서 미나토를 구하고 싶다.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돕고 싶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그게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품게 되는 '평범한 마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시점이 이어진다. 미나토의 담임인 호리 선생님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세 번째 시점을 향해 달린다. 누구의 시점이라고 명확히 짚기는 어렵지만, 이 세 번째 시점을 통해 관객들은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시간을 위해 그러니까, 바로 이 경험을 위해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이 영화와 마주하시기를.  


-

마지막 장면이 찬란하게 쏟아지고 가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블랙아웃이 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내내 귓가를 두드린다. 비 같기도 하고 햇살 같기도 한 선율은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감독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남긴 전언이었다. 제목은 Aqua.


우리의 언어는 필연적으로 현상을 다 품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들은' 듯하다.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음악이 더 깊은 의미를 전할 때가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이 그랬다. 류이치 사카모토 감독의 음악은 영화 <괴물>의 결말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여운을 품고 마지막까지 흘러간다.


끝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영화 속 대사 몇 마디를 적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는 새롭게 태어난 걸까?

아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

인간이어서, 마음을 가진 존재라서 다행이라고 말해 왔던 순간들에 대하여- 나는 어쩌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정의가, 시간의 흐름에 묻히지 않고 오래 살아남아 끝내 답해 주기를 바란다.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극 중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로 나온 안도 사쿠라 배우는 영화 <백엔의 사랑>과 드라마 <브러시 업 라이프>에서 무척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여기에서도 정말 좋았다. 그리고 아역들의 연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와 아역 연기자들의 합은 날이 갈수록 빛이 나는 듯하다.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 못지않은 눈빛을 보여준 <괴물>의 두 아역 배우들이, 작품 안에서 그리고 삶에서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를 응원하며 글을 맺는다.


<여담>

영화를 이미 보셨거나 앞으로 보실 분들은 지금까지 쓴 이 글에서 파란색으로 쓴 문장들을 특히 유심히 보아주시기를 그리고 아직 관람 계획이 없는 분들께는 언젠가 한 번쯤은 꼭 이 영화를 만나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계절의 사이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