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난생처음 따릉이 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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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시스템 '따릉이'를 처음으로 이용해 봤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타는 걸 보기만 했지 내가 직접 타는 건 처음이었다. 앱을 깔고 로그인한 후, 결제를 하고 자전거를 대여 및 반납하는 그 절차가, 왠지 꽤 높은 구릉을 오르는 일처럼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한번 타 볼까 하다가도 에잇! 언제 앱을 깔고 로그인을 한담? 하면서 그냥 지나치기를 수년.
그러다가 어제는 갑자기 웬 바람이 불어서 휘리릭 대여해 보았다. 사실은 천변 산책 도중 여러 번 스쳐 간 자전거 피플들의 '시원하고 스피디한 자유로움'에 동참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자주 산책하는 천변 길은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되어 있어 따릉이 시승을 한번 시도해 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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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방법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따릉이 전용 앱을 깔거나 아니면, '티머니 GO'라는 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개인적으로 티머니 GO 추천) 언제 설치했는지 내 폰에는 이미 티머니 GO 앱이 깔려 있었다. 심지어 회원 가입도 해 놓아 그냥 이용권 결제만 하고 바로 대여하기만 하면 되었... 이래서 시도도 하기 전에 포기해 버리면 안 된다. 일단 뭐든 그냥 한번 해 보기는 해야 함.
이용권 종류는 다양했다. 1일권부터 1년 정기권까지 있었는데 나는 시험 삼아 1일권으로 구매. 흥미로운 것은 1일권이든(결제 직후부터 24시간 카운팅이다) 1년 정기권이든 1회 대여 시 무조건 1시간 혹은 2시간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그럼 24시간 동안 1시간밖에 못 탄다는 건가?
노노. 그렇지 않다. 힌트는 '1회 대여'라는 조건에 있다. 1회 대여 시에 최대 1시간에서 2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1일권을 사서 24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건 맞는데, 다만 한 번 빌려서 1시간을 타면 일단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납하고 그냥 집으로 가도 되고, 반납했다가 다시 대여하면 그때부터 새롭게 1시간을 탈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 번 빌려서 독과점 식으로 주야장천 타는 걸 막기 위함일까?)
그럼 2시간은 뭐란 말인가? 애초에 이용권 구매 시에 '1시간 대여'와 '2시간 대여'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데 당연히 가격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1시간 이용 시 1,000원이라고 보면 된다. 2시간이면 2,000원. 나는 어제 오후에 1일권 중 1시간 대여권을 사서 바로 1시간을 탄 후 반납하고 오늘 타임아웃이 되기 전에 다시 1시간을 탔다. 덕분에 늘 느릿느릿 걸어가던 도서관을 '쌔~~~~~~~~~앵!!!!' 하고 다녀왔다. 특히 오늘 빌린 책은 <콜럼바인>으로 아주 두꺼웠는데(거의 700쪽임)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고 오니 좋았다. (반납 시 물건 잊지 않도록 주의!)
따릉이 타고 동네 한 바퀴 돈 일을 이토록 자세히 쓴 것은... 나처럼 공공 자전거를 이용해 보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이 한번 용기를 내 봤으면 해서.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고 운동도 된다. 몇 번 더 이용해 보고 1년짜리 연간 이용권을 구매해 볼까 한다. 자주 탈 거면 이 연간 이용권이 훨씬 이득이다. 1년 1시간이 30,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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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자전거를 꽤 잘 타는 편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집에는 언제나 자전거가 있었고 보조 바퀴를 뗀 순간부터는 뻥을 좀 보태서 날아다녔다. (조금이 아니라 심하게 보탠 뻥...)
스무 살 여름에는 자전거로 4박 5일간 제주도를 일주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닷새 중 사흘 정도는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빗길을 달렸다. 2003년이었으니 지금처럼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지 않아 그냥 일반 도로를 달리는 일도 잦았다. 같이 간 친구 S의 바퀴가 펑크 나 히치하이킹도 했는데 참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했다. 갓길에 자전거 두 대를 세워 놓고 오는 차마다 손을 흔들어 자전거 좀 실어달라고 했으니. 청춘이라면 청춘이었다. 그렇게 몇 대를 보내고 커다란 트럭을 모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자전거 수리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말수가 적던 그는 조용히 우리와 자전거를 번갈아 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나이가 엄청 많을 거라고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른 중반에서 마흔 정도 되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훌쩍 들어 뒤에다 싣고 운전석 옆을 정돈해 우리가 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했다.
가는 동안 우리들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릴 때에도 그저 조심히 다니라는 말 한마디가 다였던 그처럼, 조용하고 잔잔한 노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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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자전거를 탈 때 가끔 그해 여름을 생각한다. 아무리 달려도 식당 하나 나오지 않던 이름 모를 길. 하늘이 너무 가까워서 어디가 땅이고 하늘이고 우주인지 순간순간 헷갈리던 저녁 어스름. 숙소조차 정해 놓지 않고 달려 저녁 어귀면 뭍으로 올라오신 해녀 할머님들과 방을 놓고 흥정도 했다. 대체로 2만 원에 저녁까지 푸짐하게 주셨던 기억이 난다. 제주 뉴스를 보고, 태풍을 걱정하고 할머님 식구들이 드시는 과일을 얻어먹으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하던 기억.
사실, 잘 몰랐다.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래도 앞으로 쭉 뻗은 길을 마음껏 달릴 때의 상쾌한 기분은 아주 또렷하고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4박 5일 내내 내 앞에서 달려 준 S의 뒷모습도 힘들 때마다 꺼내 보는 풍경이다.
우리는 타인의 등을 보고 걷는다. 막막할 때마다 기적처럼 나타나던 그 뒷모습들이, 등이 내가 멈추지 않고 걷거나 뛰거나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힘이다. 자주 잊는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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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겠지.
그러하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