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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욱 Apr 28. 2024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37

이제현, 「왕능(王陵)」

37. 끝내 변치 않았던 왕릉

當時王呂議難勝(당시왕려의난승)   당시 여씨 집안 왕 세우는 의논 당하긴 어려웠지만

他日安劉力可能(타일안유력가능)   뒷날 유씨 집안 편히 함은 힘쓰면 가능했네.

慈母一言今在耳(자모일언금재이)   어머니 말씀일랑 귓전에 생생하니

不因存沒負長陵(불인존몰부장릉)  살았든 죽었든 간에 장릉(長陵, 유방의 무덤) 배반 할 수 없네.

이제현, 「왕능(王陵)」     


[평설]

왕릉이 우승상이었을 때 여태후는 여씨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여태후가 왕릉의 의견을 물어보자 왕릉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히었다. 반면 여태후의 똑같은 질문에 진평과 주발은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여태후는 왕릉을 태부에 임명하자 곧바로 사직하였다. 왕릉의 재상 자리를 빼앗고자 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이다. 왕릉은 집에 틀어박혀 바깥 출입을 하지 않다가 10년 뒤에 병으로 죽었다. 뒤에 진평과 주발이 모의하여 여씨들을 죽이고 문제(文帝)를 옹립하였다.

유방이 항우와 패권을 다툴 때의 일이다.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잡아두고서 왕릉을 불렀다. 왕릉의 어머니는 자살하여 왕릉에게 변심하지 말도록 면려했다. 이에 분노한 항우가 왕릉의 어머니를 팽형에 처한다. 왕릉은 말 그대로 우직한 사람이었다. 시세에 따라 처신을 달리하지 않았다. 진평과 주발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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