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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4. 2024

꿈 한 번만 잘 꿔도 인생이 바뀐다


출근하려고 바지를 입는데 아랫단의 박음질이 뜯어졌다.

엄지발가락이 그 뜯긴 부위에 들어가면서 점차 뜯긴 부위가 더 커질 것이다.

바늘로 살짝 꿰맬까 생각도 해 보지만 엄두가 안 난다.

양복바지의 박음질은 손으로 대충 때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조만간 수선집에 맡겨야 할 판이다.

수선집에서는 이 정도는 재봉틀 한번 후드득 돌리면 끝난다.

재봉틀! 어릴 적 비오는 날이면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리셨다.

비오는 날이면 밭에 나가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집 안의 일들을 몰아서 하셨다.

그중의 바느질이었다.

천 쪼가리들을 모아서 이렇게 저렇게 재봉틀을 돌리면 삽시간에 이불 한 채가 만들어졌다.

신기했다.

나도 한번 따라 해 보려고 했지만 재봉틀의 그 기묘한 기술을 익힐 수가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늘에 실을 꿰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는 눈이 침침하다며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그때 우리는 재봉틀을 재봉틀이라 부르지 않았다.

어머니도, 우리들도 재봉틀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 기계는 그냥 ‘미싱’이었다.

한참 후에 영어를 배우고 나서야 알았다.

기계라는 뜻의 ‘머신(Machine)’이 일본인들의 입을 거쳐 ‘미싱’으로 탈바꿈했고 우리는 그게 원래부터 ‘미싱’인 줄 알고 ‘미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할머니들이 ‘도라꾸, 도라꾸’라고 하길래 그게 뭔가 했더니 ‘트럭’을 말하는 것이다.

‘트럭’도 일본인들의 입을 거치면서 ‘도라꾸’가 되었고 우리는 일본인들을 통해서 처음부터 ‘도라꾸’라고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게 한둘이 아니다.

근대 문명의 이기들을 일본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당시 어머니의 미싱을 보면서 이 요상한 물건을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무엇보다 바늘 중간에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실을 꿰면 박음질이 잘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인물이 궁금했다.




재봉틀의 왕은 1800년대에 살았던 미국인 엘리아스 하우(Elias Howe)였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재봉틀을 만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5년 동안의 노력 끝에 재봉틀을 만들어 냈다.

그가 가장 고민한 문제는 바늘이 천을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그 자리에 나와야 하는데 일반적인 바늘은 바늘 머리 부분에 바늘귀가 있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하우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가 얼마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는지 꿈속에서도 재봉틀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낯선 나라에 잡혀갔는데 그 나라의 왕이 24시간 내에 재봉틀을 완성하여 바느질을 끝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명령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병사들에게 끌려 사형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병사들의 손에 들린 창을 보니까 머리 근처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을 했고,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애원하다가 꿈에서 깼다.

그리고 즉시 꿈에서 본 대로 바늘을 만들어서 재봉틀에 안착시켰다.

그의 박음질용 재봉틀은 대 히트를 쳤다.

공장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재봉틀을 구입하는 열풍이 불었다.

재봉틀 덕분에 직물 생산량이 늘었고 의류 시장도 확대되었다.

수출이 늘었고 사람들의 의복 수준이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 숙제 중의 하나가 바느질해서 손걸레를 만들어 오는 것이었다.

양말에 생긴 구멍도 바느질로 메울 수 있어야 했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여성들에게는 재봉틀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재봉틀을 꼽았던 시절도 있었다.

재봉틀 덕분에 우리나라가 섬유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도 있었다.

하우의 재봉틀 바늘은 이렇게나 여파가 컸다.

꿈 한번 잘 꾼 덕분이었다.

꿈 한 번만 잘 꿔도 인생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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