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한 소리 들으면 대뜸 나도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가 있고 내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런 말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생각이 짧았을 수는 있지만 생각 없이 몸이 움직인 게 아니고 생각 없이 말이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내 행동이나 내 말이 못마땅하게 여겨질지라도 그런 행동과 말을 한 나에게는 타당하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반응한 게 최선일 수도 있고 차선일 수도 있었다.
남들은 내 사정을 모르고 내 상황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니들이 네 맘을 어떻게 알아?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내 맘을 아냐고.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에서나 가능하려나.
나태주 선생의 시집을 읽다가 선생도 하고 싶은 말 못 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의 시 한 편이 선생의 말을 대신 전해주고 있었다.
쓱 한번 읽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다시 이전 페이지로 돌아와서 읽게 되었다.
읽고 또 읽었다.
예전에 ‘손이 가요 손이 가’라고 부르던 광고가 있었는데 이 시는 ‘눈이 가요 눈이 가’의 시라 할 수 있겠다.
읽고 또 읽고 읊고 또 읊고 듣고 또 듣는 시가 되었다.
시의 제목은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이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다’라고 하면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넘어가겠는데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라고 끝을 맺으면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해진다.
뭔가 반전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닌 게 아니라 시를 보면 그 마음이 전해진다.
사랑하는 마음이 나에게 있어도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용기가 없어서 그런가?
그건 아니다.
시 전문을 보면 시인이 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지 알 수 있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 속이 시원하도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버리면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내 말 때문에 아프고 상처받을 것이다.
시인은 그게 맘에 걸려서 입을 다물고 산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하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히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나도 할 말 다 하지 못하며 산다.
시인처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다.
쫌보 이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 것이다.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했을 때 그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다.
내가 말 못하는 이유는 내가 고상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도량이 넓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말 못하는 이유는 철저히 나 자신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괜히 말을 해서 나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손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다.
아니,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이 시를 대했을 때 나 마음이 뜨끔했다.
꽁꽁 숨겨두었던 내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았다.
말을 아끼며 사는 이유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