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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Dec 08. 2024

고디바 부인 같은 사람을 보고 싶다


11세기 영국의 코번트리(Coventy) 지역에는 악명 높은 영주 레오프릭 백작이 살았다.

그는 영지 내에 있는 백성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였다.

백성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면 영지에서 쫓겨날까 두려워서 전전긍긍하며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세금을 바쳤다.

이 모습을 딱하게 여기고 있었던 여인이 있었다.

바로 영주의 부인인 고디바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여러 번에 걸쳐 세금을 낮춰 달라고 간청하였다.

하지만 영주는 부인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무시했다.

그러다가 한번은 부인에게 황당한 제안을 하였다.

“만약 당신이 대낮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내가 세금을 깎아주지.”

그야말로 아내를 능욕하는 말이었다.

그만큼 영주는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백성들을 불쌍히 여긴 고디바 부인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졌다.




고디바 부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는 소식에 온 마을은 술렁거렸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젊고 아리따운 귀부인의 알몸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드디어 정해진 날이 되었다.

고디바 부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말 위에 올라 마을로 향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마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히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집집마다 문이라는 문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고개를 내미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고디바 부인이 왜 그 모습으로 오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서 고디바 부인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알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고디바 부인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존경의 표시를 취했다.

자기 집에 있는 모든 문을 굳게 닫는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디에나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다.

부자만 살아가는 세상은 없다.

가난한 사람만 살아가는 세상도 없다.

연봉 1억을 벌면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도 1억 이상 버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졸지에 가난한 사람이 되고 만다.

나보다 가난하고 힘없고 약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없으면 나도 존재하기 힘들다.

우리는 같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공존하는 것이다.

나만을 생각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만 생각한다면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내가 힘이 세니까 가진 게 많으니까 사람들이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나를 존경하는 것 같은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나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힘과 재물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존경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나를 존경하겠는가?




고디바 부인이 백성들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었다.

떡 한 조각도 나눠주지 못했다.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고디바 부인으로부터 너무나 큰 것을 받았다.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을 받았다.

그래서 백성들은 스스로 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존경했다.

힘센 영주 앞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임금에게 있어서 백성은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군주라고 해서 백성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백성의 모습으로 임금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백성을 잘 보살피지 못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앞으로도 쭈욱 내려갈 것이다.

동짓달 깊은 밤에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가 맴도는 것은 그런 사람을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고디바 부인(Lady Godiva)> - 존 콜리어(John Collier)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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