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에 일본으로 가신 분인데 카톡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혹시 와서 기도해줄 수 있느냐고.
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닌데 기도해주면 좋겠다고.
아버지께서 성당에 다닌 적은 없는데 영세는 받으셨다고.
나에겐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그분 입장에서는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할까?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시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낳아 키우셨다.
어떻게 셋을 키우셨을까?
어렸을 때는 업고 안고 무등을 태우셨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하셨을 테고 운동회 때는 안간힘을 쓰며 달리는 아이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셨을 것이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출가할 때는 잘 살라고 축복하셨을 테고 손주를 보았을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 것이다.
노년에 몸이 약해지셨으면서도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이셨으니까.
90세가 다 되셨다고 했는데 90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버린 듯했다.
인생은 쏜살같이 지나간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사실처럼 여겨졌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허무한 존재인가?
고개를 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스핑크스의 말처럼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라고 할까?
눈에 보이는 모습 말고 사람이 어떻게 살다가 가는 존재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랬더니 사람에게 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보였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사람과 사랑은 네모와 동그라미 하나의 차이밖에 없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아니 샴쌍둥이처럼 꼭 붙어 있다.
둘이 꼭 붙어서 평생을 함께 간다.
사랑 없이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사람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사랑이 영글어 태어나고
사랑을 먹으며 일어서고
사랑을 받으며 자라가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사랑을 베풀며 늙어가고
사랑을 받으며 떠나간다.
사람은 사랑과 함께 살다 간다.
사람은 사랑이다.”
그럼 사랑이 뭘까?
다양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사랑을 ‘같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사람이 태어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없었더라도 그를 태어나게 한 사람, 그를 사랑한 엄마는 옆에 있었다.
사람이 두 발로 일어서고 성장할 때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
손을 잡아주고 발을 움직이게 해 주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닦아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자리에 사랑도 있다.
사랑은 사람과 늘 같이 있다.
그렇게 사람은 서로 사랑을 주고 받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랑의 세상으로 떠난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20년쯤 같이 살면 얼굴도 닮고 말투도 닮고 생각도 닮고 입맛도 닮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닮아간 것이다.
사랑이 그 사람과 닮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절반을 훔쳐와 나의 절반을 합쳤더니 아들이 나왔고 딸이 나왔다.
아이들을 보면 그 안에 내 모습도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이 사랑이니까 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라의 결정체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위로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는 조용히 거울을 보시라고.
그러면 거울 속에서 아버지가 보일 거라고.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엄마를 보고 오빠와 동생을 보시라고.
그러면 그 얼굴 속에서 아버지가 보일 거라고.
아버지는 멀리 떠나가지 않았다고.
항상 우리 옆에 함께 계신다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늘 함께 하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