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주지 않은 비디오테이프가 집구석에 내내 처박힌 걸 발견하고서 나도 모르게 제일 먼저 한 행동은 머릿속에 연체료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족히 몇 주는 된 것 같아서 많이 나오면 어떡하냐는 걱정과 함께 테이프를 들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비디오 가게에 도착하자 주인은 왜 이제 돌려주냐며 뭐라고 한 마디 하더니… 꿈이었다.
원래 꿈이 그렇지 않은가. 왜 기억에서 갑툭튀하는지 모르겠고 대개 일관성도, 인과관계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까 꿈이고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진다. 만약 우리가 꿈에서 영원히 깰 수 없다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아니면 그 꿈을 바로 기록으로 남기든가. 아마도 위대한 스토리텔러들은 기상천외한 꿈을 꾸고 나서 부지런히 기억의 파편들을 주워담아 조금의 과장을 보태 매혹적인 기록을 남기고 그렇게 고전이나 스테디셀러가 나오는 게 아닐까. 뭐, 오늘의 꿈으로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지만. 가끔 어떤 꿈들은 기억의 노스탤지어로 데려가 잠시나마 아름다운 과거를 환원하고,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인 지금의 현실에서 ‘옛날이 좋았다’라는 아이러니하고도 허무한 결론을 내며 오늘을 살아간다.
교과서적으로 어제보단 오늘이 좋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밝은 게 미래일 거고, 실제로 현대화가 가져온 편리함이 어제보단 오늘이 더 낫기도 하다. 매달 내 주머니를 털어가는 넷플릭스와 왓챠엔 연체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카드 한 번만 연결하면 알아서 결제된다. 과거의 비디오 가게에서 먼지 묻은 비디오테이프를 하나씩 꺼내가며 영화 줄거리와 감독, 출연 배우를 확인하고 있는 13살 나에게 “미래엔 그런 수고 없이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것이 알아서 너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취향 저격의 영화를 눈앞에 디스플레이하고 넌 그저 고르기만 하면 돼.” 라고 말하면 그 때의 나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아마 그건 블레이드러너 2049의 세상이라고 하며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비디오가게까지 걸어가는 수고도 없이, 연체료를 내지 않고 무제한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했을 것 같다. 과거라면 난센스로 받아들일 만한 허구소설 같은 미래가 지금 ‘현재’로 존재하고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고 내 삶이 더 편해질수록 노스탤지어는 더 선명해진다. 비디오를 고르는 일, 손에 먼지가 묻어 주인 아저씨의 게으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꾹꾹 누른 기억, 연체료가 내기 싫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비디오 가게를 찾아가면 마음 좋은 아저씨가 연체료를 깎아주기도 하는 인심. 몸이 기억하는 영화적 경험을 이길 수 있는 영화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에 있는 지금, 영화관이 몹시 가고 싶다.